시냇가에 심은 나무 /달달한 묵상일기

바른삶? 바라는 삶? 어떤것을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복남진우 2016. 10. 27. 14:00


2016년 10월 27일 묵상일기. 기분날씨 : 공허함.


 저의 기분을 한단어로 표현한다면, '공허함'이에요. 국가에 대한 갈급함, 학교에 대한 갈급함, 교회에 대한 갈급함들이 모이고 모여서 저를 공허하게 하는 것 같아요. 체리힐은 "당신이 자신이 무엇에 목말라하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신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당신은 물에 목마른 것이 아니다. 진리를 갈망하고 있다. 예수님은 당신이 믿음 충만한 삶을 살도록 당신을 비우는 일을 하고 계신다." 이 글귀에서 제눈에 들어오는 말이 있어요. '비움'이에요. 시편기자는 고백하고 있어요. 42편2절에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시편 63편 1절에서는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여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결국 내 것을 비울때 하나님의 것을 채울 수 있다라는 것을 깨닫게 돼요.

 그렇다면 나는 여태 그 진리를 모르고 있었는지? 스스로 물어 본다면, 저는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실천하지 못했던거죠. 깊이 사람에 대한 심리를 공부하면 알겠지만, 첫 시작점은 "나 자신을 바로알아야 다른 사람도 보인다."인것 같아요. 나의 성격이 어떠한가부터 점검할 줄 모르면서 다른사람에 대한 심리를 말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니깐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화의 목적을 자기가 옳다는 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대화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그것을 간섭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르겠고요. 저 또한 포함되겠지만, 너무 착하게 살아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스스로 착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다른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들이 그게 옳다는 착각!!. 결국, 내가 한것이 아니라 남들이 다 한건데, 그걸 지켜야 잘 산다고 생각하고, 이 생각들이 모든영역을 지배하게 되는 것 같아 두려워지는 것 같아요. 특히, 신앙과 교육의 영역에서 심한 것 같아요. 그래서 기독교사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나봐요. 너무나도 강한 틀이 박힌 세상에서 살고 있으니깐요.

 바른 삶과 바라는 삶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인것 같아요. 우리가 생각하기에 바른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 당연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반대로 우리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물어야겠죠. "너희들은 바른 삶과 바라는 삶 둘 중에 무엇을 선택하며 살겠니?"하고요.  교육의 영역에서 많은 어른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들 중에 하나가 공부와 성적을 연관시키는 거에요.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 성적을 잘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교육학을 전공하면서 그말이 틀리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공부는 "아이들이 행복을 찾는 과정, 그것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전문적으로 뇌가 유쾌하면 되는 거죠

 많은 전문가들이 말을 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즐겁게 공부하면 된다고 말이죠.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아서 문제지만요. 아이들 스스로 느껴야 할 것 같아요. 공부도, 자기가 못하는 영역에 대해서 긴장이 된다면 "상상하다보니 두근두근 거리는 구나, 실수해도 괜찮아. 설레는 이 마음을 주최할 수 없구나"하며 스스로를 격려하면 된다고 봐요. 그런데, 교육과 신앙의 영역에서 어른들은 책임과 기준을 만들고, 그것을 아이들의 삶의 원칙으로 만들어 버려서 어떠한 갈등을 회피하게 만들고, 남들의 기준을 잘 키는 아이로, 반대로 새로운 기준에 대한 둔감한 아이로 만들어 버린 것 같아요. 역할과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대목인것 같아요. 역할에만 너무 집중했어요. 그러다 보니 존재를 잃어 버리게 된거죠.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라는 존재하나만으로도 아이들은 바뀔수 잇는데, 저부터도 이것을 잘 못해 스스로에게 화가 나는 것 같아요. "나라는 존재가 ~~보다 더 귀하고 중요한 존재야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복이니깐" 이 고백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싶어요. 많은 학부모님들이 물어봐요. "우리아이는 언제 변화되는지?" 정말 답은 단순한 것 같아요.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귀하다고 느낄때" 변한다는 것을요. 

 나는 어떤 사람인지 탐색하지 않고 남의 지적에 민감하게 여기고 그 지적만 바꾸는 사람,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게 돼요. 분노를 표현해야지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인거죠. 회복탄력성이라는 말이 있어요. 어떠한 역경속에서 누군가가 어떤태도를 보여주는것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용어에요. 우리 신앙에도 신앙탄력성이 있다고 봐요. 바로 그 누군가가 "우리 주님'인거고요. 그래서 앞서 지적했던 것 처럼 우리아이들에게 이성적인 가르침만으로 안되는 것 같아요. 여기에 실천이 되기 위해서는 감정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 감정은 단순한 희노애락이 아닌, 공허하고 혼란함으로 비워진 우리 마음에 주님이 주신 것으로 채워졌을때 드러나는 마음의 상태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네요. 그리고 글로서는 쉽게 표현했지만, 이것을 실천하기 까지 저 또한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가늠할수 없지만, 노력하고 또 노력해보기로 결단해봐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

'시냇가에 심은 나무 > 달달한 묵상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간속에 공간을 만드시는 예수님  (0) 2016.11.03
비움과 채움  (0) 2016.11.01
나는 복남샘!!  (0) 2016.10.24
복있는 사람  (0) 2016.10.24
선교는 다른 문화로 가는 거다  (0) 2016.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