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심은 나무 /달달한 묵상일기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

복남진우 2016. 4. 23. 21:37


2016년 4월 23일 묵상일기. 기분날씨 : 좋음.


 예수님을 위해 순교한 사람들을 볼때면,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생각한 적이 많았어요. 특히, 초대교회사람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다는 것은 스스로 죽음을 선포하는 것과 같았는데, 그들은 사자의 이빨도 두려워 하지 않았고, 뜨거운 불도 그들을 꺾을 수 없었으며, 나무에 달리는 고통도 그들을 어쩌지 못했어요. 그것은 '보혜사로 계신 성령님'때문이라는 것임을 보게 돼요.

 저에게도 여러가지 고백이 있는데, 그중 한가지가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고 싶다.'가 있어요.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저 또한 '보혜사 성령님'이 없이는 불가능함을 고백해요.

 성령님이라는 말은 '파라클레토스'가 원어인데, 이것을 해석하면, 파라는 곁에, 나란히 라는 말이고, 클레토스는 보호해 주는자, 위로해주는 자 라는 말이라고 해요. 즉, '곁에서서 도와주는 자'가 보혜사라는 말이고, 성령님이 보혜사가 된다는 말이에요.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은 '위로 부터 임하는 능력이신 성령님을 경험'했어요. 그래서 그들을 순교의 자리에서 넘어지지 않았던 거에요. 여기서 저에게 던져지는 질문이 있어요. "나는 순교까지 갈 수 있는 성령님의 능력이 내게 있는가?"에요. 바로 '네'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제가 부끄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에요.

 저의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면,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까지 버릴 수 있기는 한데, 너무 고통스러우면 어쩌지? 일단 살고 회개할까? "라는 수없는 고뇌가 들려와요. 그래서 오로지 기도에 힘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들은 성령님이 임하기 전에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다고 하니깐요.

 성령님은 우리의 삶속에서 '능력 있는 삶'을 살도록 돕는다고 해요. 그리고 곁에서 함께 해주시기도 하고요. 예수님은 부활하기전에도, 부활하시면서도 하신 말씀이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였어요. 임마누엘 예수님의 이름에도 드러나있고요. 때때로 화가나도, 유혹을 받아도, 옛 죄된 본성이 올라와도 주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분명히 알고, 그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돼요.

 소리없는 침묵으로 말할 수 있는 친밀감이 하나님과 저 사이에 있기를 소망해요.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기 때문에, 2년의 잊혀진 세월들을 상처없이 견딜 수 있었듯이 저 또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인생'이고 싶어요. 파라클레토스 영어로 해석하면 3가지 뜻이 나와요. 돕는자, 상담자, 위로자!!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 나를 상담해주시는 하나님, 나를 위로해주시는 하나님을 기대해요. 또한 이것들을 위해 곁에서 도우시는 삼위의 한 인격이신 성령님의 역사를 기대해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