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3월 22일 묵상일기. 기분날씨 : 좋음.
정민영선교사님의 말씀을 들었어요. 고린도전서 1장 18-25절 말씀으로, '십자가의 도, 역설적 복음'이라는 주제였어요.
참선지자와 거짓선지자는 오늘이나 옛날이나 늘 있어왔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예레미야와 하나냐의 경우가 그렇죠.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였고, 하나냐는 인기가 많은 선지자였어요. 그래서 저는 이시대를 분별해야 하고,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껴요. '십자가의 복음'에 대해서 생각해봐요. 역설적임을 깨닫게 돼요. 십자가라는 끔찍한 형벌의 틀과 기쁜소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복음과는 모순어법이거든요. 그렇다면 우리는 복음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고 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어요.
본문말씀에 나온 고린도 교회는 혼란스러웠어요. 마치 우리를 보는 것 처럼 말이죠. 고린도 교회는 '티라노스' 즉, 한명의 독재자가 이끌어가는 것을 원했어요. 고린도 지역와 늘 분쟁이 되었던 아테네를 보면, 풀뿌리민주주의가 정착되었어요. 이 말의 어원자체가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즉, 교회가 되는 거죠. 그래서 교회는 한사람의 독재가 아닌, 여러사람이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운영이 되어야 하는 것이며, 목사님의 역할은 우리를 사역자로 세우는 것이 목사님의 역할이라는 것을 깨닫게 돼요.
고린도 교회는 두가지 문제가 있었어요. 한가지는 교회의 분열때문에 평화의 회복이 필요했고, 두번째는 허영심과 자만심으로 똘똘 뭉쳤던 고린도 교회의 사고방식이 문제였어요. "사도 바울이 과연 우리 지도자가 될만한 사람인거야?"하며 끊임없이 의심했죠. 하지만 사도바울은 엄청난 스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스펙을 자랑하지 않고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갔어요.
고린도 전서 2장 3절에 "너희 앞에 설때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나" 바울의 겸손을 엿볼 수 있어요. 4절에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5절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즉, 철저히 하나님께 기대고 있는 바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고린도교회의 패러다임은 힘의 논리였어요. 내가 길들인 하나님이 얼마나 말을 잘들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 신앙이 아니거든요. 루이스의 <<헤아려본 슬픔>>을 보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르겠어요. 루이스 같은 사람의 기도를 들어줄만 한데, 결국 사랑하는 아내가 죽고, 큰 슬픔에 빠졌어요. 그러면서 스스로를 되돌아 보기 시작해요. 그리고 루이스는 깨닫죠. "하나님은 내가 길들이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해한 하나님을 거듭거듭 부숴버려야 한다. 나는 주님을 가진자였다." 라는 고백을 마지막으로 해요.
하나님께 실망을 안해본 사람은 없을거에요. 아마도 우리는 계속해서 실망하게 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루이스와 같은 고백이 있어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돼요. 메시아가 어떻게 십자가 달릴 수 있을까? 사람들이 기대했던 메시아가 아니었어요. 사순절의 전통의 의미를 살펴보면, 십자가의 복음을 왜곡시키지 말라는 우리의 '참회'이며, 십자가 복음의 회복의 '경신'이 필요해요. 경신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니, "이미 있는 제도나 기구 따위를 고쳐서 새롭게 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더라구요.
빌립보서 3장 18절에서 바울은 울어요. 왜냐하면, 교회안의 여러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때문에 울거든요.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는 '나의 배를 채우게 해주는 하나님'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임을 시사했어요. 하늘의 시민답게 살아라!! 진리로 거룩해져라!!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다!!가 바울의 처절한 외침이었어요. 즉, 오직 십자가!! 오직 예수!! 오직 말씀!! 인거죠.
인쇄술의 발달과 함꼐 루터의 종교개혁은 확산되었어요. 1518년에는 교황청의 사람들과 개혁주의자들간의 논쟁이 있었어요. 복음에 대하여 서로 말하기를 교황청의 사람들은 '영광의 신학'이라고 했고, 개혁주의자들은 '십자가의 신학'이라고 했죠. 성경은 개종을 말하는 것이 아닌 '회심'을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얼마나 회심을 했는지 궁금해져요. 회심은 근본적으로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을 말하는 거고, 마치 사랑에 빠지듯이 새로운 정체성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며, 관점이 완전히 바뀌는 것을 말하는 건데 말이죠. 두가지 교훈을 얻게 돼요. 첫번째로, 내가 피조물로서 창조주를 만나는 것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가진거기 때문에 종교생활 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과의 대화가 필요한거죠. 두번째로, 그분으로 만족하자. 그것이 기쁨이다 라는 거에요. 성경은 하나님의 두꺼운 러브레터라고 해요. 나는 하나님만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살았는지,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게 되네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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