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29일 묵상일기. 기분날씨 : 좋음.
오늘은 누가복음 9장 1-9절 말씀을 묵상했어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이들에게 귀신을 이기고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셨어요.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병을 치료하라고 이들을 보내셨어요. 옛뉨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여행에 필요한 돈이아 물품을 아무 것도 갖지 말고, 필요한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께 의존하라고 하셨어요.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서 그분이 행하신 것과 같이 복음을 전파하고 병자들을 치료했어요. 분봉왕 헤롯은 일어나는 모든 일을 듣고 매우 혼란스러웠어요. 그것은 어떤 사람들은 죽은 세례요한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가 나타났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옛 예언자 중의 하나가 다시 살아났다고도 하였기 때문이에요. 헤롯에 말했어요. "내가 요한의 머리를 잘랐는데, 이런 소문이 들리는 그 사람은 누구인가?" 헤롯은 예수님을 한번 만나 보려고 했어요. 예수님도 아셨던 것 같아요. 제자들이 말씀을 전할 때 사람들이 영접할 수 도, 겨부할 수도 있다는 것을요. 오늘 한 아이와 상담을 했어요. 그 아이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어요. 눈물을 흘리는 그 아이를 보면서 제 모습이 보이더라구요. 잘해보고 싶은데 상황이 도와주지 못하고, 내가 다 하자니 나의 한계가 느껴지기도 하고, 나는 10걸음을 가는데, 다른 사람들은 한걸음도 겨우겨우 가는 것 같은 상황속에서 외롭고, 좌절하는 것은 어떡해 보면 당연한 것 같아요. 예수님의 제자들도 권세와 권능으로 나아가 전하였지만, 사역의 성공과 실패가 그들에게 있었어요. 저에게도 혼란스러움이 있어요. 나의 의견이 맞고, 훌륭하고, 진짜 맞다 할지라도 공동체의 선택을 따라야 하는지?에 대한 혼란스러움이에요. 함께 하는 공동체라면 당연히 공동체의 선택을 따라가는 것이 맞지만, 공동체의 선택이 틀린 것이라면? 엄청 되돌아 가야 할 것이며, 심지어는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길을 가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저에게는 공동체적인 부르심, 공동체적인 순종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저는 이런 혼란스러움이 자주 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명을 좆다 보면 부인, 배신, 절망, 두려움, 근거 없는 비난, 위협, 욕설, 거짓말, 질투, 분노, 자살, 도망, 헛소문, 잔인함, 실망, 고통, 슬픔, 목표 상실, 가망 없음, 방향을 잃은 날들, 미래의 꿈과 계획과 지위의 죽음 이런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곘어요.<<나에게 폭풍이 왔다, 잰 해리슨>>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도 가리라"(마 26:32)고 말씀하고 계셔요.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고 하신 것이에요. 갈리리마을이 어떤 곳인지 생각해보면 마음이 뭉클해지네요. 주님은 절대 우리의 상황에 놀라지 않으신다거죠. 사나운 폭풍을 마주하기 직전인 결정적인 순간, 소망과 미래가 앞에 있다는 분명한 약속이 내게 있는한 저도, 우리 아이들도 넘어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해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
'시냇가에 심은 나무 > 달달한 묵상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0) | 2016.01.31 |
---|---|
진짜부흥이란? (0) | 2016.01.31 |
내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안다 (0) | 2016.01.29 |
집으로 돌아가라 (0) | 2016.01.28 |
예수님은 누구신가? (0) | 2016.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