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심은 나무 /달달한 묵상일기

2015년 9월 23일 다 이루었다

복남진우 2015. 9. 23. 10:54


 창세기 3장 23절에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꼐서 아담과 그의 아내를 에덴 동산에서 쫒아 내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나온 근원인 땅을 열심히 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전서 2장 6절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 싶어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증거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셨는데, 이는 때가 되어 이루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요한복음 19장 30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맛보신 다음 다이루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고개를 아래로 떨구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오늘 말씀들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쫒아내셨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 다 이루었다. 라는 말씀이 와닿더라구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들에게 소중한 것을 흔하게 하셨던 것 같아요. 시원한바람과 따뜻한 햇살, 공기 우리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우리에게 거저 주신거자나요. 그리고 아담에게 있어서 에덴동산은 아마도 우리아이들에게 있어서 에버랜드와 같은 곳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괜찮았고, 다 알았지만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거였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상실감은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이었을거에요.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에 아담이 느끼는 상실감과는 다를거에요. 이것은 상상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세월호유가족들을 보면 그 상실감이 약간은 이해가 가기도해요. 내가 누구를 사랑할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아담의 타락을 보고 하나님은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끼셨고, 분노도 느끼셨을거에요. 완전하신 하나님의 분노는 옳음에서 오는 화라고 하더라구요. 그것을 '진노'라고 하고요. 진정한 노라는 뜻이고요. 하지만 인간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진노를 감히 헤아릴 수 없고요. 완전하신 하나님의 슬픔과 진노를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주셨어요. 완전히 씻고, 완전히 진정시킬 뭔가가 필요했으니깐요. 그분이 바로 예수님인거죠. 그래서 예수님을 중보자라고 하기도 하고요. 중보자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하나님이 사람의 완전한 모습으로 오셨고,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신거였어요. 그것도 우리를 대신해서 말이죠.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인데, 예수님이 대신 짊어지신거에요. 예수님이 당한 형벌은 고통자체가 목적이었어요. 우리가 받는 징계는 우리에게 약이 되는 거지만 예수님의 형별은 우리를 대신해서 고통받는 거였거든요. 그리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라는 말씀은 의식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외침을 할 수 있었던 거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볼 수 있는 모습인것 같아요. 이렇게 쭈욱 묵상하면서, 말씀을 들으면서 깨달아지는게 있어요. 나는 무엇을 더 내려놔야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을 자주했었는데, 결국 해답은 '십자가'였던 것 같아요. 그냥그저 아무조건 없이 내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지고 가면 되는거였어요. 남의 십자가 작다고 해서, 남의 십자가가 크다고 해서 내가 열등감을 가질 필요도, 우월감도 가질 필요도 없는거죠. 기독교인라면 자신들의 사명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니깐요. 주님이 다 이루셨어요. 우리가 할일은 그런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만 남은거죠. 그래서 한명의 영혼이라도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 잃은 자를 찾는 것, 그것만 생각하면 되는 거였어요. 이제는 그렇게 살아야겠죠. 그렇게 살아가기를 소망하며 이전의 나의 죄성들에 대해 회개하게 되네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