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심은 나무 /달달한 묵상일기

2015년 7월 4일 관계의 회복으로 이어지는 고통

복남진우 2015. 7. 4. 08:51

 

 고난과 고통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봐요. 루이스는 고난의 상황을 "덫에 갇힌 쥐"라고 표현했어요. 어디도 빠져 나갈 구멍이 없는 상태, 만약 빠져 나갈 구멍이 있고 미래를 계획하고 새로운 기획을 할 수 있다면 고통이 없거나 덜하겠죠. 하지만 어떤 일이 고통스러운 까닭은 미래가 없고 출구가 없기 때문이라고 해요.레비나스는 이러 표현을 써요. "나에게 매인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에서 오는 아픔" 즉, 자기 자신에게 매여 있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자기연민과 비슷한 상태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고통의 순간 사람들은 가장 먼저 웅크러지게 된다고 해요. 스스로 다른 사람들과 피하고 싶은 거죠. 그리고 그 다음 단계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드러내고 싶다고 해요. 신음한다든지, 화를 낸다든지, 한탄한다든지, 불평하는 단계인거죠. 도대체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하는 거지? 도대체 내가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런거야?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그런 질문 자체가 웅크림에서 벗어나 다른사람이 함께 해주기를 기대하는 몸부림이라고 해요. 그리고 세번째 단계가 고통 받는 타인에게 관심을 품고 타인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단계라고 해요. 즉, 연합, 연대라고 해요. 그러면서 "나는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를 묻게 된다고 해요. 존재, 곧 있음이란 이어짐이고, 모든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고 해요. 동시에 나는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나의 삶은 하나님이 덤으로 주신 것이며 하나님의 은헤로, 하나님의 선물로 누리며 즐기며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베드로는 고난중에 기뻐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고난과 고통중에 기뻐할 수 있을까요? 이런 의문을 항상 가졌는데, 나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존재구나를 깨닫게 되면서 하루하루를 주신것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정말 대단한 축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돼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세상의 풍족한 축복가운데 진정성 있는 주바라기는 안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이기도 하고요. 공동체의 연합을 위해 노력하지만, 연합이라는 것은 고통이 전제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해요. 고통 받는 타인에게 손을 내밀어 준다든지 뭔가 갖다 준다든지 해서 희생과 섬김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내가 뭔가 잘못해서 오는 고난이 아닌,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고자 하는 고난이나 나의 성장을 위한 고난은 즐거워 해야 한다고 베드로는 말하고 있어요. 계속해서 고난과 고통의 문제를 생각해보면 끝이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이렇게 마무리를 짓고 싶어요.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좁은문 좁은 길 나의 십자가 지고 나는 달려가리라"고백하고 싶고, 나의 고통이 주님과 연결이 되고, 아픈 다른 이웃들과 연결이 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해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