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심은 나무 /달달한 묵상일기

2015년 6월 4일

복남진우 2015. 6. 4. 10:44


 오늘 아이들과 함께 잠언 18장 13-24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와닿았던 구절이 있었어요. 21절에 혀는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힘을 가졌으니, 혀를 놀리기 좋아하는 자는 그 대가를 받을 것이다. 라는 말씀이었어요. 어느 공동체이든 이런 사람들이 꼭 한두명씩 있는 것 같아요. 모든 상황이 다 좋지 않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어서 시작도 하기전에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려요. 저또한 상황을 먼저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비관'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시대를 탓하기도 하고, 미성숙한 아이들을 탓하기도 하고, 소극적인 학부모님들을 탓하기도 하면서 "우리는 할 수 없어"라고 말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가끔은 "상황이 이러니 우리는 할 수 없어"라고 말할 때도 있고요. 어제 CTS에서 박만호-오영인 선교사님의 선교사역이 소개되었어요. 그분들은 인도네시아에서 무슬림촌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는 선교사님들이신데, 그분들의 선교사역을 보니 정말 무모해 보였어요. 무슬림문화로 가득찬 그 마을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데, 그분들을 가족들과 같이 돌보는 모습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박만호 선교사님이 인터뷰중에서 이런말을 했어요. "상황이 어쩔 수 없어서, 센터를 지을 수 밖에 없었어요. 하나님께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드셨고,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더라구요" 이 짧은 인터뷰를 통해서 저는 깨달은 한가지가 있었어요.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상황탓을 했던 내가 문제라는 것을요. 상황도 만드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 상황가운데 역사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보게 돼요. 예레미야애가 3장 20-23절 말씀에,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평소에 부정적인 말이나 낙심되는 말들을 많이 하고 있지 않는지 되돌아 보게 되고, 나의 입술을 통해 격려의 말, 소망의 말, 위로의 말들이 흘러나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하며 결단해봐요. 오인숙의 <<힘들면, 기대렴>>이라는 책을 보면, 이와 관련된 예화가 소개가 돼요. 보어전쟁(영국과 트란스발공화국이 벌인 전쟁, 1899-1902)중에 특이한 죄명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이 죄명은 '낙심시키는 자'였다고 해요. 그는 군이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적군이 얼마나 강한지, 그에 반해 아군은 얼마나 약하고 보잘것 없는지, 아군의 전략에 문제가 있으며 군인들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그것이 총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해 아군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말았어요. 예나 지금이나 이런자들은 늘 있어 왔던 것 같아요. 공동체 내에서 이런자가 늘 있고요. 그래섬 뭘 시작도 하기전에 무기력함에 직면하게 되고요. 그래서 그 누구도 낙심시키는 자가 되어 자신이나 이웃의 영혼에 쇠고랑을 채우는 일은 멈추어야 할 것 같네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