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심은 나무 /달달한 묵상일기

2015년 5월 13일 인생은 해석이다

복남진우 2015. 5. 13. 21:05

 

 9시가 다되는 시간 조용히 주님의 음성에 귀기울여 봐요. 그리고 오늘 하루를 되돌아 보면서, 내가 잘했던 일이 뭐가 있었나, 내가 잘 못했던 일이 뭐가 있나, 생각해보면서 뭔가 큰 깨달음과 함께 성숙함이 내게 문을 두드리고 있는것 같아요. 원래는 이시간에는 모임을 하고 있거나, 번아웃이 되어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인데 여전히 저는 움직이고 있어요. 예수님의 공생애를 살펴보면 정말 대단하다 라는 말밖에 안나오는 것 같아요. 늘 큰 무리가 따라다녔고, 그 무리들은 다 뭔가 결핍된자들만 있었고요. 예수님의 공생애중에 여러사건들도 많지만 오늘은 중풍병자 친구를 위해 예수님이 말씀전하시고 있는 집 지붕을 뚫고 자기 친구를 고쳐달라 요청하는 장면을 생각해봐요. 마가복음 2장을 보면, 많은 무리들로 인하여 예수님께 데려갈 수 없게 되자 예수님이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렸어요. 정말이지 어이도 없고, 무례하기도 한 상황에서 우리 주님은 그들의 이면을 보셨어요. 그리고 말씀하시죠.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의 그 외에도 여러 병자들을 고치실때나,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때 항상 등장했던 말씀이 있어요. "불쌍히 여기사" 예수님은 누구에게 어떤 사역을 하시든 "궁휼이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라는 거에요. 그렇게 까지 해서 나에게 오고 싶었구나 하는 그들의 이면을 읽어낸거죠. 바로 이것이 공감의 능력이 아닌가 싶어요. 이찬수목사님도 설교말씀을 통해 이야기 하셨지만, 예수님의 공감의 능력을 바탕으로 한 '긍휼의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 기독교사인 나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 같아요. 아이들을 대하면서 가장 찔리는 것은 내가 편하게 대하는 학생이 있는 가 반면에 내가 경계하는 학생이 있어요. 아이들도 마찬가지겠만 저에게 신념이 하나 있다면, 갈등을 푸는 열쇠는 결국 "있는자"들에게 있다에요. 권위가 있고, 지식이 있고, 리더의 자리에 있는 자들이 갈등을 풀어야 된다는 거죠. 큰 식당의 주인들이 주변의 작은 식당도 먹고 살아야하기 때문에 문을 일찍 닫는 모습속에서 깊은 감동을 느껴요. 그리고 최근에 어떤 세월호사건때 기적적으로 살아난 아이의 인터뷰가 기억이 나요. "나만 아프지 않으면 먼저간 친구들에게 미안하자나요" 제 마음이 이 말로 인해 많이 무너져 내리네요. 저는 여기저기 아픈데가 많아서 병원을 자주 찾는데, 그때마다 듣는 소리가 있어요. "좀 쉬세요"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소리가, "좀 쉬어라"에요. 난 나름데로 쉬고 있는 것 같은데, 저는 계속 뭔가를 만들어 내면서 내 자신을 학대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내 몸이 많이 상해 일할 수 없게 되면 문제가 되겠지만, 저는 오히려 이 상태가 좋아요. 왜냐하면, 내가 아푸지 않으면 연약하고 힘없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니깐요. 영안이 열려 주님을 보기 원해요. 저에게 뭔가 보상이 있다면, 주님을 느끼며, 주님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욥의 마지막 고백을 보면,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이제는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직접 주님을 보고 느끼기 원해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구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 있구나. 누가 이런말을 했다고 해요. "인생은 해석이다" 정말 그 말에 공감해요. 내가 경계하는 아이들을 누구에게 맡길때가 없어서 나에게, 우리에게 맡긴건데..난 그아이를 피하고 경계만 세웠으니, 정말 할말이 없네요. 회개하며 고백해요. 내가 지금 아파서 감사합니다. 정말 힘든 아이들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 모르는 공동체를 내게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