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15일 묵상일기. 기분날씨 : 좋음.
지금 내 마음의 상태 그대로 주님앞에 서서 직면해봐요. 지금 기분의 상태는 '좋음'인데, 뭔지 모르는 공허함이 제 내면에서 멤도는 기분이에요. 이기분이 뭘까?를 묵상해보면서, 원인을 찾아봐요. 뭔가 해야하는 일에 대한 조급함도 있는 것 같고, 실수를 하면 안된다는 강박관념도 있는 것 같고, 다른사람들을 의식하는 마음도 있는 것 같고, 이런저런것들을 신경쓰려하니 내 자신의 한계를 느끼다보니 공허해지는 것 같아요. 완벽해지려는 것 자체가 교만임을 알면서도, 내안에 있는 죄된 본성이 가만히 나두지를 않는것 같네요.
그러면서 요한복음 11장 38-44절 말씀을 묵상해봐요. 예수님이 무덤에 도착하시자, 다시 눈에 띄게 분노의 폭풍에 휩쓸려서 무덤을 열라고 명하셨어요. 그 말씀에 마르다는 더이상 가망이 없다고 반응을 해요. 그 다음에 하나님아버지께 소리내어 기도를 드려요. 주님은 끊임없이 하나님과 교통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분의 기도는 곧 그분의 삶임을 보게 돼요. 자신의 모든 생각속에서 그분은 자기 아버지 하나님의 임재 안에 끊임없이 계시죠. 그로 인해 생겨난 확신 가운데 그분은 나사로를 일으켜 달라는 자신의 간구가 다른 모든 간구와 마찬가지로 진정으로 상달된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할 수 있었던 거였어요.
예수님 앞에 엎드려 "주님이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라고 이야기해요. 이 상황에서 드는 생각이 있어요. 예수님은 그들을 분명 사랑하셨어요. 그런데 왜? 그들의 필요를 바로 채워주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에요. 그들의 필요를 채우러 가기 전에 왜 그들이 버림받은 시간을 겸험하도록 했을까? 하는 점을 생각해보게 돼요.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자체가 그냥 내버려두는 무절제한 사랑이 아니라는 점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주님은 그들을 너무 사랑하셨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남겨두기를 원하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주님은 그들이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을 경험하기를 원하셨던 것 같아요. 이것을 브루스 밀른은 자신의 강해서에서 '거룩함'이라고 표현하고 있더라구요. 머레이 맥체인은 "거룩함의 기쁨에 비할 수 있는 기쁨은 하나도 없다."고 했어요. 어쩌면, 내가 왜 공허할까? 하는 질문에, 또다른 기쁨을 찾으려고 하는 저의 그릇된 욕망에서 나온것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부활한 나사로를 보면서, 생명과 죽음에 대해 묵상하게 돼요.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불가피한 것이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셨어요. 그리고 그 승리를 우리들에게 나눠주셨고요. 이런 의미에서 '죽는'것은 사는 것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같아요.
나의 모든감각을 주님께 향하기를 원해요. 나의 생명의 주권자이신 주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이 뭘까?를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네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에 어둠이 있을 수 없고, 거짓이 있을 수 없음을 고백해요. 그렇기 때문에, 거룩한 삶이 되는 것이고, 그 거룩함 가운데 하나님앞에 나아갈 수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거룩해지고 싶네요. 하나님과 함께하는 기쁨이 충만한 하루하루를 기대해봐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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