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자 이찬수목사님의 말씀을 들었어요. 이사야 6장 13절 말씀을 보면, "그루터기가 남아 있는 것 같이"라는 말씀이 나와요. 그리고 창세기 7장 23절 말씀에 보면, '남았더라'라는 말씀이 나와요. 한국교회와 지도자들을 보면 정말 막장에 치닫고 있구나를 보게 돼요. 아침에 매일하는 드라마를 부모님때문에 보게 되는데, 엎치락 뒤치락, 배신과 불륜이 계속 반복되는 막장을 보게 돼요. 한편으로는 그렇게 평가하면서도 드라마를 보며 재미를 느끼기도 하고요. 그런데 우리사회와 한국교회를 보면 그런 막장드라마보다도 못하는 것 같기도 해요. 국민들에게 보여지는 것이 있어서 정말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보여지는 것을 보면 드라마는 재미라도 있는데, 한국교회와 우리사회가 보여주는 것은 재미도 없고 실망만 안겨주는 것 같아요. 오늘 아침 뉴스를 보는데, 대형교회 부목사님이라는 분이 성추행을 해서 경찰에 잡혔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어요. 인간의 죄성으로는 그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양무리를 치는 목자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는 한탄과 함께 바로 저를 바라보게 되었어요. 기독교사라고 하는 나는 그럼 떳떳한가? 나 또한 짧은치마를 입은 예쁜여자가 내 앞에 보인다면, 나 또한 죄된본성으로 성적 충동을 느끼는 나를 느낄 수 있었어요. 물론 마음의 동기는 불붙듯이 일어나지만, 나의 눈은 바닥을 향하고 스스로 절제가 돼요. 하지만 은밀한 공간이라면? 그것이 실제가 아니라 스마트폰과 컴퓨터, TV속에 있는 여자라면? 저또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회개가 돼요. 그 마음이 괴로우니깐요. 나또한 그 목사님과 다를게 뭐가 있나 싶어서요. 성적 욕망과 돈, 명예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죄성들이 타락한 사회와 교회, 공동체, 지도자들을 만들고 있어 마음이 아프기만 하네요. 특히 성적욕망과 명예는 절제된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하지만 돈없이 살 수 없는 이 현실속에서 어떻게 버텨내야 할지는 저 또한 자신이 없고 두려워요. 한편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기도 해요. 겨울나무가 생존을 위해 초라한 나무가지만 가지고 버텨내듯이 이 세상을 버텨내야 할 것 같아요. 잎만 무성한채 살기 보다는 기나긴 겨울을 버티고 버텨 봄에 새싹을 피고 열매를 맺고 싶어요. 위기를 맞은 시대에서 위기를 망각하며 사는 이 시대에서 누가 이 시대의 그루터기가 될 수 있을까요? 이찬수 목사님은 먼저, 부활하셔서 지금일하시는 주님을 보는 믿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요. 요한복음 11장을 보면 죽은 나사로 이야기가 나와요. 마르다는 주님이 여기에 계셨더라면 오빠인 나사로가 죽지 않았다고 하소연을 해요. 마르다는 과거에만 머물러 있었던 거죠. 도이킬 수 없는 과거에만요.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셔요.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그리고 마르다가 바로 말해요. 주님이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줄을 내가 압니다. 마르다는 막연한 미래에도 머물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여기서 문제는 마르다에게는 '현재'가 없었다는 거에요. 우리도 마찬가지로 '현재'가 많이 약한데,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막연한 미래도 아닌 지금 현재 일하시는 주님을 발견하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돼요. 현재 하나님이 우리에게 능력을 베푸시기를 바라는데 자꾸 과거에 연연하고,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이야기 하는 것 같아 되돌아 보게 되네요. 두번째로, 우리를 동역자로 삼아 주시는 주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라고 해요. 요한복음 11장 39절에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셔요. 마르다의 시선을 현재의 시선으로 끌어 드리는 주님의 모습을 보게 돼요. 고린도 전서 3장 9절에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라고 말하고 있어요. 예수님의 관심은 죽은 나사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있었던 거에요. 나 개인을 보게 되면 자기연민에 계속 빠지게 되는 것 같아요. 왜 나만, 왜 우리 공동체만, 하며 불평과 원망이 나오겠죠.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거죠. 마음이 아프지만 부활의 능력을 믿으며 버티고, 같이 버티며 그루터기 같은 남은자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거죠. 공동체라면 개인만 버텨내는 것이 아니라, 같이 버텨내는 거죠. 그것이 공동체의 힘이니깐요. 윤복희씨의 우리의 하나 라는 찬양의 고백을 들으며 깊이 묵상에 잠겨보게 되네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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