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심은 나무 /달달한 묵상일기

[스크랩] 저녁 시편 - 시편 4편

복남진우 2013. 2. 2. 09:35

시편 4편

까닭없는 어려움을 당하고 계십니까? 아무런 이유없이 누군가가 당신에 대한 거짓된 소문을 퍼뜨리거나 하여 당신을 깎아내리고 있나요? 당신 주변에는 당신을 책 잡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가요?

이 질문에 "네"라고 대답하신 분들에게는 시편 4편이 꼭 필요합니다.

이 질문에 "아니오"라고 대답하신 분들에게도 시편 4편은 꼭 필요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위에서 제가 언급한 상황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벧전 4:12). 지금은 아니라고 하더라고 과거에 그런 경험이 있으실 수 있고 또한 앞으로도 분명 그런 일을 당하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시편 4편 말씀을 통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다윗의 간구 (1절)

[다윗의 시, 영장으로 현악에 맞춘 노래]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이 시편은 다윗의 시편입니다. 1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 전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시이지만 1절은 아주 직접적인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기도는 두 가지 사실에 기초해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속성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내 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는데요, 2절에서 다시 말씀드리겠지만 현재 다윗은 "불의"에 처해있습니다. 그렇기에 의로우신 하나님께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과거에 다윗을 "곤란 중에"서 "너그럽게" 하셨습니다. "곤란"이라는 표현은 우리가 시편에서 꽤 자주 접하는 표현인데요,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아주 좁은 공간에 갖혀서 꼼짝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어떻게 해야할 지도 모르는 그런 상황을 말합니다. "너그럽게 하셨다"는 말은 원어적으로 "공간을 만들다, 넓은 곳에 두다"를 의미합니다. 시편을 보면 하나님께서 "넓은 곳, 광활한 곳"에 우리를 세우신다는 표현이 가끔 있는데요, 우리를 광야에 둔다는 말씀이 아니고 우리가 꼼짝 못하는 상황에 있을 때 그곳에서 우리를 건지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다윗은 과거에 자신이 그런 꼼짝할 수 없는 상황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시고 도우셨던 사실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다시 한번 그 긍휼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상황 (2절)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겠는고(셀라)

흥미롭게도 2-5절에서 다윗은 자신의 대적들을 향해서 말합니다.

먼저 다윗은 자신의 대적들을 향해 묻고 있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나를 욕되게 하겠는냐? 어느 때까지 헛된 것을 사랑하고 거짓을 말할 것이냐?

다윗은 왜 이렇게 물을까요? 다윗의 대적들이 다윗에 대해 있지 않는 것을 있다고 하고 거짓을 퍼뜨려 다윗을 욕되게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까닭없이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본 시편의 배경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덧붙임"을 봐주세요.)

우리도 이런 상황을 종종 겪습니다. "너 어제 그 얘기 들었어? 글쎄 ㅁㅁ가 그러는데 ㅇㅇ가 **했다더라 ..."와 같은 "수군수군하는 말"은 사람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것이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입니다. 그러한 말이 나에 대해 악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 의해 의도적으로 퍼지면 그것은 너무나 큰 상처로 돌아옵니다.

여기 다윗이 그런 상황에 있습니다. 1절에 비추어보면 다윗은 지금 "꼼짝도 못하는 상황"에 다시 한번 놓여있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잘못과는 상관없이요.

죄가 있어 당하는 고난과 까닭없이 당하는 고난 중 어느 것이 더 힘들까요? 저는 까닭없이 당하는 고난이 훨씬 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고난의 강도의 문제라기 보다는 우리의 "인내"의 문제입니다. "내가 왜?"라는 의문에서 시작되는 억울함은 분노로 바뀌기도 하고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곤란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다윗의 확신 (3절)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1절에서 다윗은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긍휼과 도움을 위해 부르짖었는데, 3절에 와서는 그것이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요?

1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속성과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3절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생각이 미쳤을 때, 다윗은 더 이상 고민하거나 걱정하지 않고 확신 가운데 거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시는데, 다윗 자신이 그 중 하나였던 것이죠.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들을 향한 긍휼과 은혜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들의 "아버지"가 되시어 그들을 돌보십니다. 그 관계를 생각할 때 다윗은 확신 가운데 거하게 되었습니다.

1절과 3절의 차이는 다윗이 처한 환경의 변화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생각의 변화에서 온 것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처한 환경을 바라보고 나를 바라보면 우리는 의문-억울함-분노-원망의 길을 가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과 나의 관계를 바라보면 우리는 확신 가운데 거할 수 있습니다. 그 확신의 결과는 6-8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쁨과 평안입니다.

다윗의 충고 (4-5절)

[4]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셀라) [5]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
마음의 여유를 찾은 다윗은 그 대적들에게 충고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여 더 이상은 죄를 범하지 말 것을 말합니다. 거짓말을 그치고 회개하며 하나님을 의뢰하라고 합니다.

그들이 두려워서 제발 좀 그만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지금 피해자로서 혹은 약자로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택 받은 자로서 당당하게 그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그들이 계속해서 다윗을 모함하고 핍박해도 이제 다윗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더 이상 그것 때문에 상처 받고 힘겨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결국은 그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니까요. 다윗의 확신과 기쁨과 평안은 그들과는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다윗의 평안 (6-8절)

[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 [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다윗의 상황은 분명 어렵고 그를 심적으로 힘들게 했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 다윗은 무고히 당한 그런 상황에서 억울해 하고, 분노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다윗이 처한 상황을 보며 누구도 그에게 ""좋은 것"을 보여줄 수 없다라고 하고 있었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6절, 민 6:23-26 참고). 그래서 그는 오히려 기쁨과 평안을 언급합니다. 그가 누리고 있는 기쁨은 농부가 풍성히 추수할 때에 누리는 기쁨보다 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슬픔, 고민, 번뇌가 아니라 평안 가운데 눕고 잘 수 있었습니다.

의의 하나님, 긍휼의 하나님, 주권자 하나님, 그리고 "나의" 하나님께 내 생각의 촛점을 맞추면 우리는 확신과 기쁨과 평안 가운데 거할 수 있습니다.

시편 4편은 "저녁 시편"이라 불립니다. 이유는 8절에 있는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한다"는 고백 때문입니다.

우리는 까닭없이 고난을 당할 때, 거짓으로 모함을 당하고 수치를 당할 때, 억울함과 분노와 원망으로 힘들어 합니다. 잠도 잘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하지만 그러할 때에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여전히 확신과 기쁨과 평안 가운데 잠들 수 있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긍휼이 넘치는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을 주권적으로 선택하여 당신의 하나님이 되어주신 그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평안히 눕고 쉽시기 바랍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질 것이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수고를 알아주실 것입니다.

덧붙임

많은 신학자들은 시편 4편도 3편과 같은 상황, 즉 다윗이 압살롬으로 도망했을 때 지은 시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의 평안"이라는 전체적인 주제가 비슷하고, 2절에 나오는 "치욕"이나 "거짓, 궤휼"같은 주제들이 당시 다윗의 상황과 잘 맞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4편은 3편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습니다. 3편에서 다윗은 육체적인 면에서의 위협과 공격을 말하고 있는 반면 4편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4편에서 다윗을 힘들게 했던 것은 다윗을 깍아내리고 치욕스럽게 했던 대적들의 거짓과 속임수였습니다.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다윗의 자세에 있습니다. 3편과 4편을 비교하면서 읽어보시면 그 확연한 차이를 느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3편에서 다윗은 굉장히 낮아져있는 상태에서 온전히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에 기초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4편은 조금 다릅니다. 다윗은 자신의 대적들을 향해 자신있게 말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들에게 충고를 하기도 합니다 (3-5절). 또한 그는 자신을 "경건한 자," "선택받은 자"로 지칭하면서 자신의 대적들과 자신을 분리합니다 (3절).

저는 이 차이가 두 시편이 기록된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시편 3편의 배경이 된 다윗이 압살롬으로부터 도망했던 사건은 사실 다윗의 죄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사무엘하 11장부터 18장의 말씀을 읽어 보시면 잘 아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다윗도 알고 있었기에 3편에서의 다윗은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거나 하지 않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의지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4편은 분명한 배경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까닭없이 고난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도 조금은 다른 태도로 그 고난에 대응하고 있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출처 : 최성환의 음악산책
글쓴이 : 최성환 원글보기
메모 : 시편4편의 말씀을 깊이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