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0일 묵상일기. 기분날씨 : 좋음.
시편 137편 1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바빌론의 강변 곳곳에 앉아서, 시온을 생각하면서 울었다."라는 말씀이 나와요. 이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의 여러 강변 곳곳에서 시온을 생각하며 왜? 울었을까를 생각해보면, 아마도, 후회의 눈물이었을 거에요. 수많은 선지자들이 "너희들 계속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거야"라고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듣지 않았거든요. 과거 그들의 실패의 경험이 그들을 뼈저리게 반성하게 만든거였죠. 그래서, 과거 실패의 경험이나 기억이 '현실의 유혹'을 이기는 힘으로 활용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기업에서는 '실패상'이라고 해서, 그 기업내 사원중 가장 실패를 많이 한 사원에게 보상을 한다고 해요. 아마도 그 기업은 '실패에서 오는 귀함'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저 또한 살아 생전 성공만 하지 않았거든요. 실패의 경험이 더 많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시편 137편을 다시보면 시제가 과거시제임을 발견하게 돼요. 즉, 시인은 과거를 회상하며 글을 썻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결국, 실패는 미래를 향하여 '꿈구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마태복음 25장의 말씀을 묵상해봤어요.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작은자'를 섬기라고 말씀하고 계셔요. 40절 말씀을 보면, "임금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 없는 사람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다른 번역성경으로는 "지극히 작은자를 섬기라"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그래서 작은자를 섬기는 일이 곧,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강력한 의무사항'임을 인식하게 돼요. 사람들은 작은 자보다는 큰자에게 관심을 더 가지고, 작은일보다는 큰일에 관심이 많을 때가 많아요. 저 또한, 그런 유혹이 많고요. 왜냐하면, 학교에 있다보면, 우리 아이들이 작은자로 보일 때가 많거든요. 그리고 나이가 어린 선생님들을 볼 때도 그렇고요.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 때면 늘 경계하죠. 그만큼 작은자를 섬기고 작은일을 하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라는 거죠. 35~36절 말씀을 보면,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 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어 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할 것이다" 이 말씀들을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작은일은 우리가 못하는 그런일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왜? 하기가 어려운건지? 저부터 반성하게 돼요. 예를들어 우리나라에 '미리내 가게'가 있다고 해요. 미리내가게는 서스펜디드 커프 운동에서 유래된 한국형 나눔 문화에요. 식사 등 서비스를 받으러 왔던 손님이 형편이 어려운 이를 위해 본인 것과 함께 추가 금액을 미리 지불해 놓으면, 가게 밖 현판에 표시된 것을 보고 온 사람이 표시된 금액만큼의 서비시를 이용할 수 있는 가게에요. 저는 이런일들을 아이들과 함께 해보고 싶어요. 작은일에 관심을 가지고, 작은자를 섬기는 일들 말이죠. 왜냐하면, 낮은곳에서 작은자를 섬기는 일은 우리 영혼의 변질을 막는 도구이기 때문에 그래요. 결국 교만은 내가 큰자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부터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어쩌면, 예수님의 가르침은 단순한 것 같아요. '작은자가 목마를 때, 물한컵 주는 것'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닐까 싶네요. 앞으로 학교에서 어떤 한 아이가 '선생님 저 목말라요' 라고 말할 때, 그 아이에게 '물한 컴 주는 교사'가 되기를 소망해보네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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