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심은 나무 /달달한 묵상일기

선한 양심의 소리

복남진우 2017. 3. 26. 17:19


2017년 3월 26일 묵상일기. 기분날씨 : 좋음.


  데카르트가 이런 말을 했어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여기서 나는 생각한다를 나는 의심한다로바꿔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조금은 어려운 말이 될 것 같은데, 의심과 불확실성에서 진리로 나아가는 것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즉, 진리에 접근할 수 있는 이성의 힘이 있다는 거죠.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저에게 이런말을 자주 해요. "너는 너무 논리로 따지는 경향이 있어"  나는 이 지적을 곰곰히 생각해봐요. 하나님께서는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을 싫어하실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요. 우리 주변에는 마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 우기거나 떼쓰는 사람,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 엉뚱한 소리를 하는 사람,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렇다고 그들이 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단지, '이성의 힘'에 비춰 볼 때 이런 사람들은 합리성에 근거해 알맞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거죠.

  논리에 맞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허술하게 듣지 않죠. '과연 그럴까?'라고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해요. 합리적이란 말도 딱딱한 느낌을 주니깐, 지혜로운 의심?, 건강한 의심? 등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여하튼, 주장이 적절한지, 그 주장의 근거가 합당한지 따져 보며 판단해보자는 거죠. 물론 이 과정이 과학적일 수 있어요. 과학적이라는 말은 어떤 자연현상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가지고 필연적이고 보편적인 원리를 찾아보는 것이 과학적이라는 말인데,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찾아보는 노력 또한 우리에게 필요해 보여요. 저희 주변에 창조과학회가 있지만, 요즈음 너무 극단적으로 흘러간다는 지적을 받고 있더라구요.

  이런 과정을 우리는 '비판적 사고'라고 말해요. 저는 성경을 묵상할 때 이 비판적 사고능력이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에요. 성경에서 나오는 베뢰아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었거든요. 말씀이 그러한지 끊임없이 반복해서 묵상하고 또 묵상했던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그 이성의 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한 또다른 권능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눈과 마음이 있다고 해요. 우리의 눈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세계를 보는 것을 통해 증명할 수 있다면, 우리의 마음을 뭘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돼요. 융의 분석 심리학에서도 말하고 있고, 사도 바울도 말하고 있는 '양심'이라는 거에요.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말과 행동을 했을 때 양심의 가책을 느낄때가 많아요. 저 또한 많이 경험해 봤어요.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훈련하는 사람도 있는데, 양심의 가책에 귀를 기울이는 연습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본이고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요. 그런데 양심이 하는 소리에는 듣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려고 하는 사람들은 뭘까요? 와전히 모순인거 같아요. 디모데전서 3장 9절에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자", 디모데 전서 1장 19절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져라", 시편 26편 2절 "내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벧전 3장 16절 "선한 양심을 가져라", 고후 1장 12절 "우리 양심이 증언하니" 여러 성경 구절에서 말하고 있듯이 우리의 깨끗한 양심, 선한 양심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돼요.

  기도해요. 사도행전 17장 11절에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잇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주님, 베뢰아 사람들처럼 말씀이 그러한가 하여 말마다 성경을 상고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날로날로 확장되게 하시며, 나의 선한양심의 소리에 귀기울이게 하소서


 -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