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8일 묵상일기. 기분날씨 : 좋음.
밤을 설치며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나는 '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돼요. 그러면서 어떤 결단을 내리기 까지 누군가가 내몰차게 해주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해요. 어떻게 보면 저의 연약함이기도 한 것 같아요. 계속해서 직면하며 다듬어가야 할 부분인 것 같네요.
어제에 이어서 에스라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가려고 해요. 에스라는 모든 백성에게 3일 내에 예루살렘으로 모이라고 명령했어요. 그리고 누구든지 이 소집에 응하지 않는 자는 재산을 몰수하고 공동체에서 추방하겠다고 선언해요. 이것은 그가 아닥사스다 왕으로부터 형벌을 가할 수 있는 사법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아홉째 달 이십일에 모두 다 하나님의 성전 광장에 모였어요. 유대 달력으로 구월은 양력 십이월에 해당한다고 해요. 이떄는 겨울이면서 우기이기도 하고요. 그날은 큰비까지 내려서 두려움으로 떠는 백성을 더욱 심히 떨게 만들었어요.
드디어 에스라가 백성을 향해 일어났어요. 그리고 그들을 책망해요.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여자를 아내로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이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여 그 지방 사람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여기 주목할점이 있는데, 에스라는 지금까지 '우리'라는 1인칭을 사용하였는데, 이제는 '너희가'라는 2인칭을 사용한다는 점이에요.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뭘가?를 생각해봐요. 먼저 1인칭으로 참회한 사람만이 2인칭의 책망을 힘 있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돼요. 그러면서 이런 질문을 아이들을 가르치는 기독교사로서 스스로 해보게 돼요. "나는 내가 먼저 회개함으로 죄를 무섭게 책망하는 영적 권위가 있는 사람인가?"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 족속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버리라는 에스라의 명령에 대해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라고 대답했어요. 그리고 제사장, 레위인, 평민의 순서로 명단을 올렸었는데, 영적 부패에 대한 책임이 지도자들에게 더 크게 있음을 보여주었어요. 이혼당한 사람 중 몇몇은 자녀까지 낳은 여인이었을 거에요. 상상해보면, 엄청난 고통이었을 것 같아요. 부부였고, 자녀까지 낳아줬는데 이방여인이라는 이유로 이혼을 해야만 했으니깐요. 에스라는 백성에게 이 같은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영적 개혁 운동에 동참하기를 요구했는지 생각해봐요. 아마도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어요.
요즈음 자주 묵상하게 되는 단어가 있는데, '순수성'이에요. 다양성을 외치는 시대에서 예수님의 주되심을 고백하지 않은채, 하나님의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것에 대한 경계심이 들어요. 물론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실천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듯이, 예수님의 주되심을 고백하지 않는 사람 또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는 거죠. 제가 생각할 때에는 여러가지 것들이 들어오면서 '순수성'을 상실하게 한 것 같아요.우리 사회안에 진보와 보수가 있지만, 신앙에는 진보와 보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저는 교육에 있어서는 진보지만 신앙에 있어서 만큼은 보수를 자처하고 싶네요. 왜냐하면, 신앙의 핵심은 "예수님은 나의 구주이시며 나의 구원자 이십니다."라는 고백은 절대 변할 수 없는 진리이니깐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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