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7일 묵상일기. 기분날씨 : 좋음.
에스라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에스라 9장부터의 말씀인데,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뒤 외적인 상황은 대단히 순탄했어요. 페르시아 정부는 호의적이었고, 이웃에 있는 대적의 방해도 그쳤고 말그데로 만사형통이었어요. 하지만 문제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었어요. 에스라는 몇몇방백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과 통혼하여 서로 혼합되어 있음을 듣게 되었어요. 더욱 충격적인 것은 제사장, 레위인 같은 종교 지도자들과 방백들, 고관들 같은 정치 지도자들이 더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이 같은 정보를 접한 에스라는 옷을 찢으며 기가 막혔어요. 이스라엘 백성이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해 몸부림 치던 시기였기 때문에 에스라가 느꼈던 위기감이 컸을 것 같아요. 에스라는 저녁 제사 까지 기가 막혀 앉아 있다가 금심 중에 일어나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손을 들고 기도해요.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이 미침이니이다." 어떤 글을 보니깐, 에스라의 기도 중에 '우리'라는 말이 무려 28회나 나온다고 해요. 에스라는 백성의 죄가 곧 자신의 죄라는 의식이 있었고, 그에 대한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던 거에요. 즉, 저들의 죄가 아니라 우리들의 죄로 생각했던 거죠.
에스라의 기도는 먼저 바벨론 포로 사건에 대한 해석으로 시작이 돼요. 그리고 이스라엘이 범한 죄를 구체적으로 지적했어요. 그의 기도를 묵상하다보면, 진심으로 죄를 미워하고 아파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도 느낄 수 있었나봐요.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했다고 해요. 진심으로 죄를 슬퍼하는 자를 통해 죄를 슬퍼하게 하는 거룩한 영향력을 사람들에게 미치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그때 모여든 참회자 중 한 사람이 일어나 "이스라엘에게 아직도 소망이 있나니"라고 외쳤어요. 이말을 외쳤던 사람은 '스가냐'라는 사람인데, 자신도 복잡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율법대로 준행할 것을 단호히 결심을 해요. 이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은 에스라만 혼자 남겨두신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영적부흥운동을 일으킬 사람을 예비하고 계셨다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바른기도는 더 깊은 고통과 함께 더 확실한 소망을 일으킵니다."라는 말이 와닿아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리가 함께 동참했고, 에스라는 여전히 밤이 새도록 밥도 먹지 않고 물도 마사지 않으면서 죄 때문에 슬퍼했어요. 여기서 에스라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에스라는 페르시아 당국으로부터 율법을 지키게 하기 위해 사법권행사까지 부여받은 사람인데, 자기의 죄로 인식하고, 금식으로 기도하는 모습에서 그의 진성성을 엿보게 되는 것 같아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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