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심은 나무 /달달한 묵상일기

2015년 8월 30일 서로 사랑하라

복남진우 2015. 8. 30. 16:37

 

 오늘 설교말씀의 주제는 "새 계명"이었고, 본문말씀은 요한복음 13장 31-35절 말씀이었어요. 먼저 교만에 대해 말씀을 하셨는데, 교만은 "나도 이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하는 것이 교만이라고 하더라구요. 이사야 14장 13-14절 말씀을 보면,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여기서 해석이 살짝 엇갈리는 부분이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사단이 하늘로부터 타락한 것과 연관시키기도 하고, 자신을 하나님과 동일시한 교만한 바벨론 왕의 종말을 언급한거다 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어요. 여하튼 저의 신학적인 지시으로는 뭐가 맞다 틀리다 할 수는 없고요. 중요한 것은 "나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을 것 같은데"하고 생각했다는 거죠. 열등감 만큼 무서운것이 또 있다면 바로 이러한 교만함인거 같아요. 비교의식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하는데 이 비교의식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는 저 또한 쉽지 않네요. 하지만 분명한건 극복하고 이겨내야 한다는 거죠. 다윗을 상상해봤어요. 다윗이 곤경할때와 안정될때를 비교해서 보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요. 곤경할때의 다윗의 마음은 어떠했는지 시편을 보면 너무나도 잘 알 수 있어요. 하지만 다윗의 왕국이 안정될때에는 다윗의 모습은 안일함이었어요. 분명히 왕이 전투에 나가야 할 때 나가지 않고 자신의 왕궁에 머물렀다는 말씀에서도 알 수 있어요. 그리고 그 때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게 된거고요. 그리고 범하게 되고, 계속해서 하나님께 연속적으로 죄를 짓게 돼요. 결국은 나단선지자가 다윗을 권면하면서 다위의 회개로 넘어가게 돼요. 많은 사람들이 안정감있는 직업, 안정감있는 뭐 등등. 안정감을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물론 안정감을 느끼는 것이 중요한데, 스스로 질문을 던져봐야 할 것 같아요. 무엇을 위한 안정감인지? 주변의 사람들을 봐도 그렇고, 성경에 위대한 인물들을 봐도 그렇고 그들의 삶이 안정될때 하나님이 역사하신 경우를 잘 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꼭 그들이 곤경에 처할때, 꼭 그들이 고난과 어려움에 처할때 그랬던 것 같아요. 신약의 시대때에는 예수님을 믿는것 자체게 곤경이니깐 할말이 없고요. 또 느끼는 거지만 하나님은 우리와 소통하기를 원하신다는 거에요. 주님이 가졌던 길은 인자의 길, 그리스도의 길 즉, 겸손과 순종의 길이었어요. 목적은 인간구원이셨고요. 어떤 영상을 봤는데, 귀머거리 아버지가 자신의 딸을 위해 피를 수혈하는 태국광고였어요. 인상에 강하게 남겨진 이유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그러다 보니 정말 내 말을 들으실지, 나를 정말 보고 있는지, 정말 내게 말씀을 하고 계시는지 우리는 잘 알 수 없을때가 많은데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벙어리로 만들고, 귀머거리 취급을 해도 피를 수혈하는 아버지처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피를 흘리셨다는 사실에 감동이 돼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게명을 주셨는데, 그것은 "서로 사랑하라"였어요. 요한복음 13장 34절 말씀을 새기고 또 새겨봐요. "새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