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은 주님의 날이기 때문에 즐거운 시간들이 이어졌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함이 아쉽기만 한 것 같아요. 오늘은 스스로 성찰해보려고 해요.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자신을 돌아보았어요. 그 과정속에서 나의 오래된 벚이 도움을 주었고요. 그 오래된 벚이 있기 때문에 제 스스로 성찰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수잔존슨이 이런말을 했어요. "사랑은 이성보다 더 섬세한 본응이다" 기독교는 사랑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진짜 사랑을 언제쯤 이해할 수 있을까요? 여전히 믿음이 있어보이지만, 믿음이 없는 것 처럼 말하고 행동할 때도 많고, 많은 사람들앞에서 가면을 쓰고 믿음있는 척 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보려고 해요. 저는 제 성격상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듣는 것을 싫어해요. 저희 어머님이 저에게 조언해 주시기를 "너는 너에게 좋은 말만 해줘야 좋지"라고 핀잔을 주시기도 하지만, 그것은 저에 대한 애정어린 조언이라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고 사람은 모두가 "다 그래"하며 나의 이런 연약함을 보편화 시킴으로 방어하고 싶지 않네요. 그래서 '직면'이라는 것을 선택해보려고 해요. 나의 연약함과 마주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이렇게 묵상을 하고 깨달음을 얻고 정리를 하는 이시간에도 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고독과 침묵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법을 배웠다면, 요즘 균열과 부서짐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법을 깨달아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저에게 균열이 생기는 것을 느껴요. 오래된 저의 죄된 본성이 균열을 보이고 있고, 늘 오래도 나를 따라다녔던 열등감에 균열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이제는 그 균열가운데 부서져야 하는데 쉽게 부서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저는 학창시절부터 공부를 잘하는 누나와 비교를 당하면서 성장을 했고, 어디를 가든지 저는 비주류로 살았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없어서 늘 주류로 남기위해 몸부림 쳐왔던 것 같아요. 참 피곤한 인생을 살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그런 열듬감이 회복되지 않은채 살다보니 저평가를 받을 때나, 과대평가를 받을때 두려움을 느끼는것 같아요. 그래서 뭔가를 해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떠나지 않고요.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이고 제몸의 불균형으로 아파오고 그런 것 같아요. 어제 깨달은 것들 중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했는데 저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을 추구하려고 하는 본능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내 안에서 이 두마음이 충돌이 되고 저는 그 안에서 몸부림 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보이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들 뿐이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보이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도 있고요.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돈으로 살 수 없느 것들임을 알고 있어서 계속 충돌되는 것 같아요. 소위 냉혹한 현실이라 불리는 바깥세계와 별도 나만의 병든 내면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거였죠. 즉, 주변 환경으로부터 겪는 고통을 피하고 싶어 일종의 심리적 환상 세계를 건설하는 것과 같은 맥락인거에요. 근데 이세계는 순간적이지만 기분을 전환시키는 방도가 되어 버리기도 하고요. 쉽게 이야기 하면 순간적으로나마 긴장이 해소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내 멋대로 하는 경우가 있고요. 앞으로 나의 균열의 상태를 직면하고 부서지고 또 부서질때까지 몸부림을 멈추지 말아야 겠어요. 결국은 그것이 하나님께 더가까이 나아가는 길이 될테니깐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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