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심은 나무 /달달한 묵상일기

2015년 7월 20일 죽음을 배우다(1)

복남진우 2015. 7. 21. 22:04

 

 아르스모리엔디의 "죽음을 배우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에 대해 묵상을 해봤어요. 교회에서나, 주변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에 대해 저는 배워본적이 없어요. 하지만 인간은 유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죽게 되는 건 사실인데 말이죠. 여하튼 우리 문화는 죽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려 주지 못하고 있어요. 의학과 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죽음과 죽음을 방지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더 많이 알게 되었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는 잘 모르고 있어요.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고요. 또한 슬픔 가운데 있는 친구를 위로하려 할 때도 어쩔 줄 몰라 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고요. 스티브 키난이란 작가는 "오늘날의 가정은 사랑하는 사람의 임종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인간의 유한성을 깨닫는다"고 말하고 있어요. 잘 죽는 문제는 잘 사는 문제라고 해요. 잘 살기 위해서는 죽음을 제대로 인해해야 한다는 말이 되는데, 죽음을 제대로 파악하기란 힘들지만 그러면 인생이 더 풍성해질 수 있다는 말에 공감이 돼요. 동방정교회 주교인 칼리스토스 웨어는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죽음이라는 실재를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때에야 비로소 진정으로 살 수 있게 된다"고 말하고 있어요. 저는 할 수 있는 한 죽음을 피하고 싶어요.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이 두렵고, 내 소중한 사람들이 죽는다고 생각하면 더욱 두려워져요. 왜냐하면 죽음은 한 사람을 자신의 몸으로부터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을 유지하는 능력으로부터 앗아가는 악이기 때문에 그래요. 웨어라는 사람이 이런글을 남겼어요. "죽음은 창조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죽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게 하려고 창조하셨다." 성경에서는 죽음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비유하고 있어요. 그래서 헷갈리는 부분이 죽음이라는 것은 악인 동시에 축복이라는 거죠. 그래서 앞으로 죽음에 대해 묵상을 해볼건데, 결론은 쉽게 나온 것 같아요. "우리는 본능적으로 죽음을 피하고 외면하고 싶어하지만 죽음을 직시하고 죽음을 이기신 하나님께만 소망이 있음을 계속해서 기억하자" 죽음을 묵상한다는 솔직히 생소한 것 은 사실이지만, 나중에 이렇게 고백해 보고 싶네요. "평안히 오라 네가 올줄 이미 알고 있었어 나는 이 여정에서 나를 도와줄 만한 것은 하나도 소홀히 한 것이 없었지"

 

-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