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낙심하는 것들을 보면, 정말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 같아요. 어떤일을 맡고, 그일들이 생각한데로 잘 되어야 하는데, 잘 되지 않을 때 낙심하는 경우도 있고, 나는 지금 상황이 이런데, 이런 나의 상황을 알아주지 않고, 자꾸 나에게 요구한다고 그 사람에게 낙심하는 경우도 있고, 잘 해보려 하지만, 잘 회복되지 않아 낙심할때가 있고, 가장 많이 낙심케 하는 것은 '너나 잘 하지, 누구한테 뭐라고 하는거야' 하는 마음이 들때 가장 낙심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그것도 나보다 윗사람일때 말이죠. 교학상장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것은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스승과 제자가 함께 발전한다는 뜻이라고 해요.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은 우리를 더욱 예수님의 제자답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가르치는 자나, 배우는자가 따로따로가 아니라, 일방적인 것 이 아니라, 함께 인것 같아요. 성경에서 에스더라는 여인이 나오는데, 그 여인은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어요. 사촌오빠인 모르드개가 딸처럼 키웠다는 것을 보면, 부모님이 아주 어릴 때 돌아가신 것 같아요. 게다가 포로로 끌여온 상황이고요. 이것만해도 충분히 자기를 비관하며 열듬감에 빠질 만 한데, 에스더는 그러지 않았어요. 이런것이 인생인것 같아요. 자기에게 주어진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어서면 그 환경이 자기 인생을 빛나게 하는 면류관이 될 것이고, 어려운 환경에 무너지면 평생 그렇게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인생이 끝나겠죠.이찬수 목사님이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책에서 청년들에게 당부하는 말이 있었어요. "지금 우리가 어렵고 불우한 환경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흉기가 되느냐, 축복의 도구가 되느냐 하는 것은 환경이 정해는 주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이것을 기억하고 다시는 나약하게 부들부들 떠는 자리에 들어가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재철 목사님이 '뉴스미션'에서 이런 기사를 냈더라구요. '목회, 맡겨주신 한 사람 위해 내 삶 바치는 것"이다. 나와 함께 신앙생활 하는 교인 한 사람의 삶도 변화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설교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한 사람을 위해 내 생을 바칠 수 없다면 그것이 목회입니까? 하는 말을 이야기 하더라구요. 그리고 설교자는 "가능한 한 본문을 빨리 결정하고, 본문을 원문으로 해독한 다음, 그 이해의 안경으로 일주일을 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인사이트를 틈틈히 메모하라, 그리고 그것을 설교의 기둥으로 삼되, 성도들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단어를 찾아 설명하기 위해 진통의 시간을 겪어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교육이란, 뭘까를 생각하며, 맡겨주신 한 아이를 위해 내 삶을 바치는 것이 교육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김병호 교수님이라는 분은, 교육이란, 한 학생과 그 가정을 위해 내 삶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욕먹어 가며 불사르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더라구요. 오늘 목회란, 교육이란 무엇인지 묵상해보게 되네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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