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인의 사회를 보면, 공교육에서 병들어 가는 아이들을 위해 교사가 아이들에게 인간성을 심어 주고, 정서와 인격을 길러 주기 위해 온갖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결국 아이들을 길러 내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에 동의를 할꺼에요. 그런데 왜 바뀌지 않나? 라고 질문을 던지면 할말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니버의 기도를 묵상해봐요. "주여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평온을 주시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바꾸는 용기를 주시고, 내가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그런데 지금 우리는 학교나, 교회들은 바꿀 수 없는 건 붙잡고, 바꿀 수 있는 건 놔두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기위해서는 주님께 무엇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무엇이 내가 할 수 없는 일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해야 겠죠. 이것이 기독교교육이라고 생각해요. 라틴어로 교육을 '에두카레'라는 말이라고 해요.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젖을 아기한테 아무리 물려도 아기가 빨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스스로 빨도록 해야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자기주도학습력과 관련이 있는 거고요. 그래서 러닝이 중요한것 같아요. 왜 공부하는지? 무엇을 공부하는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를 찾아내는 거죠. 왜는 철학이며 무엇은 과정이며 어떻게는 방법이 되는 거에요. 그래서 아이들한테 푸시가 아닌 풀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이 돼요. 학부모교육을 담당하고 있는데, 결국 좋은 자식이 좋은 부모를 만드는 게 아니라 좋은 부모가 좋은 자식을 만든다 라고 해요(이재철목사님). 정말 크리스천 부모님이라면 '너보다 못한 아이와 친구가 되어 주라'고 말할 수 있어야 겠죠. 관심을 가지게 하고, 그 관심가지고 있는 것에 관찰을 시키고 관찰한 것을 나와 관계를 맺게 해야 겠죠. 그것이 바로 참된 교육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기독교사는 아이가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관찰을 어떻게 도와주는지, 관계는 어떻게 맺는지 안내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봐요. 그리고 그런 교사가 되기를 소망해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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