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심은 나무 /사람을 낚는 생명의 말씀

느헤미야를 묵상하며

복남진우 2015. 1. 1.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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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이 주신 과업을 우선적인 것으로 여기고 그것의 성취를 위해서 기도와 땀과 눈물과 인내의 희생을 바치며, 때로는 안팎의 반대와 불의에 맞서 과감히 대항하는 용기와 결단력을 보여 주는 느헤미야의 리더십은 그런 리더를 원하고 있는 이 시대와 우리들에게 있어서 의미심장한 것을 시사해 준 것 같습니다. 이글은 전주 TCF선생님들과 함께 PBS를 하면서 후기로 남겼던 글들을 한데모아 정리를 해본 것입니다.

느헤미야 1장에서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불행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는 느헤미야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세 온 자신의 형제 두어사람을 만나서, 예루살렘의 형편을 물었고, 긍휼을 베푸시기도 하고 흩으시기도 하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러한 관찰을 토대로 우리는 질문을 이렇게 던져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의 환난과 능욕에 대한 느헤미야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느헤미야가 25년후에 과거를 회상하면서 쓴 것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25년이 지나고도 기억이 날 만큼 그때의 상황과 이야기를 잘 경청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내가~"라는 표현이 반복해서 나왔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민족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느헤미야는 자신의 정체성을 물론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엿볼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1절에 "그때에 내가"라는 고백을 통해서 기도와 함께 영적부담감으로 한발짝 나아가는 느헤미야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분명한건 느헤미야는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때론 중보기도로, 때론 금식기도로, 때론 합심기도로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하나님을 아는 탁월한 지식으로 "기도의 내용"도 달랐습니다. 자기유익을 위한 기도가 아닌, 자기희생의 기도였습니다. 이런 모습 속에서 저는 '제자도'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나는 어떻게 우리학교를 위해, 우리아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교제가운데 어떤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오늘할일을 내일로 미루자" 어떻게 보면 이 말이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여유를 가지고 티프모임에 나올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우리 모두가 공감하였고 웃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해 우리들의 의지가 순종함으로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느헤미야는 이런 믿음의 반응으로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키는 것으로 먼저 반응을 보였습니다. 여기서 얻을 수 있었던 교훈은 먼저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시킴으로써 먼저 기도할 수 있는 우리의 마음부터 준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결코 나 혼자만의 독백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시작되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 우리가 응답하는 것임을 깨달으면서 나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드는 모든 것이 사실은 나를 하나님의 임재속으로 이끄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임을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느헤미야는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 때 왕의 술을 맡은 관원이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 제20년 때에 왕에게 간청하여 유다의 총독으로 임명을 받고,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위한 모든 재료들을 공급하라는 왕의 명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느헤미야가 도착하자마자 그는 사흘간, 밤중에, 몇몇사람과 함께, 유다 사람들에게나 제사장들에게나 귀족들에게나 방백들에게나 그 외에 일하는 자들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성벽을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서 참고로 '살펴보다'를 영어로 보면, examine 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이 뜻은 '조사하다, 관찰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다면 느헤미야는 아무에게 알리지 않고 조사를 하고, 그 후에 계획을 이야기 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느헤미야는 민족의 문제를 제대로 알기 위해, 듣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조사를 하면서 문제를 실감하고, 그 문제에 대한 대안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문제를 제시하기만 하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런 느헤미야의 모습을 통해서, 공동체의 어려움과 문제를 직접 살펴보고 내가 해야할일을 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결단하고 실행을 하려고 하면 꼭 산발랏, 도비야, 게셈같이 넘어지게 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시는데 있어서, 영적인 긴장감을 놓치 말라는 하나의 영적 안전장치와 같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흩으시게 하기도 하시고, 모이시게도 하시기 때문에 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 있어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깨달아 지는 것은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할 지라도, 어떤 무너진 성벽앞에(우리의 문제 앞에) 그 문제를 바로 보고, 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고 이것을 실천할 수 잇는 실천적인 역량 또한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examine'이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춰 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무엇에 집중해서 관찰하게 되면, 그 무엇에 관심과 사랑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가 관심과 사랑을 보여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내가 관심과 사랑을 드러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느헤미야의 경우 이러한 질서 정연함을 이루게 하는 요소들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해봅니다. 적어도 세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도중에 미리 계획해 둔 점(2:1-10), 사전에 모든 상황에 대해 세심한 조사를 해 둔 점(2:11-16), 그리고 일을 맡기기 전에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한 점(2:17-18)입니다. 기도중에 미리 계획해 둔 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발견하는 일이며, 세심한 조사를 비밀리에 했다는 것은 그의 분별력 있는 판단이 엿보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지도자는 어떤 특정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사람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잘 시켰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3장말씀을 통해서 예루살렘은 10개의 성문과 4개의 망대로 구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고, 그 중 7개의 문이 중건되었음을 본문을 통해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전체적인 성벽 건설이 40여 명의 책임자 아래서 효과적으로 분담되어 진행된 사실을 볼 때 느헤미야의 리더로서의 역량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부터 허드렛일을 보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성벽재건을 위해 참여하였습니다. 그들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다는 점에서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그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냈던 느헤미야의 리더십 또한 본받을 만 하지만, 그 공동체 속에서 직업과 지역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배려와 헌신을 통해 잘 어우러져 갔던 그들 또한 본받고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공동체를 잘 이끌어가는 능력 뿐만 아니라 공동체 속에 녹아나 공동체를 조화롭게 만들고 공동체가 함께 목표를 향하여 잘 나갈 수 잇도록 만드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그들에게 없었더라면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PBS를 하면서 우리 TCF공동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서로 다른 우리지만 자발적으로 모여 배려와 섬김으로 서로를 세워줄 수 있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이 한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에 큰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집 가까운 부분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자기들이 할 수 잇는 것 부터, 눈에 보이는 일부터 했음을 알 수 있고, 자기에게 주신 달란트대로 감당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함께' 허물어진 곳을 세우고, 망가진 곳을 다시 고치고, 뚫린 곳을 막으면서, 벽을 완성해 나가는 그런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느헤미야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정리하면서 핵심사건과 그 결과에 대해 관찰하였습니다. 등장인물은 대조적으로 우리라고 하는 느헤미야의 사람들과 산발랏, 도비야, 아라비아 사람들, 암몬사람들이라고 하는 대적들이 등장하였습니다. 그 대적들은 그 누구도 예루살렘의 회복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유다사람들을 치고 요란하게 하겠다는 그 소문만으로도 유다사람들에게는 공포였을 것 같습니다. 대적들은 느헤미야와 유다사람들을 와해시키기 위해 그들을 향해 심히 분노하였고, 비웃었으며, 공포감을 조성했습니다. 이러한 고도의 전략이 깔린 심리적 압박은 그렇지 않아도 연약한 유다 사람들을 깊은 좌절과 절망으로 몰아 넣어 노래를 통해 표출되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를 생각해 보면 우리의 대적은 눈에 보이는 세력일 수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일수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대적들은 우리가 기독교사로 사는 것 자체를 조롱하고 비웃고 평가 절하 시킬 때도 있습니다. 이럴때 느헤미야는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무엇인지 가르쳐주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 기도하며, 주변을 살피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그의 리더십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그냥 그저 기도만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았고, 유다사람들에게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있게 하기도 하였고,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게도 하였습니다. , 그는 기도하며 행동했던 그의 리더십을 볼 수 있었고 그렇게 나아갈때 하나님은 적의 계획을 무산시키시셨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우리 공동체 또한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적과 환경과 현실의 두려움가운데 주님을 신뢰하며 싸우며 나아갔으면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이땅의 교육을 위해 믿음의 성벽을 쌓은 일은 힘들지만 결국 승리는 우리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느헤미야 말씀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짖습니다.

 

"우리는 자식들이 많아서 식구가 많습니다. 살아 남으려면 먹을 곡식이 필요해요"

"먹을 것이 너무 부족합니다. 곡식을 얻으려면 밭과 포도원과 집을 저당 잡힐 수밖에 없어요"

"왕에게 세금을 바치려면 밭과 포도원을 저당 잡히고 돈을 빌어 쓸 수밖에 없어요"

"우리자녀들도 귀한데 우리의 아들딸들을 노예로 팔아야 하고,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갔는데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자 느헤미야는 크게 노하였지만, 깊이 생각하고 대회를 열어 귀족들과 민장들을 꾸짖고, 맹세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13절에 그들이 말한 대로 행했다고 합니다. 후문맥으로 가서는 느헤미야가 먼저 솔선수범을 보였던 것을 알 수 있었고, 19절에 가서 그의 기도가 많은 위로를 주는 것 같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여기서 우리는 이런질문을 던질 수 있었습니다. 귀족들과 인장들을 불러 왜 하필 회중들 앞에서 대회를 열은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책임감을 주기 위해서일수도 있겠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기쁜소식을 주기 위함일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 이유들을 생각해볼 수 있었지만, 가장 위로가 되었던 말은, 느헤미야의 그런 행동은 깊이 생각한 결과였고, 어떤 징벌적인 정의가 전제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약해진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관계회복을 위한 목적이 전제되어 있었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선생님이 비유하기를 '회복적 생활교육'으로 비유를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슨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고 피해자의 요구를 먼저 들어 보면서 관계를 회복해 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비관적 낙관주의'다 라는 말씀도 하셨는데, 현실을 제대로 보고 하나님의 회복과 구속의 일들을 기대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핵심질문에 대해 답을 찾아가면서 내 삶에 하나하나 적용하면서 느낀점은 느헤미야와 같은 리더가 되어야 겠다는 점과, 비관적 낙관주의자로 현실을 볼때 외롭지만 함께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있다는 것이 힘이 되고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전주 TCF 선생님 한분한분이 느헤미야와 같은 지도자가 되어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갔으면 합니다.

 

6장에서 대적들의 위협을 인식한 느헤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안전을 위해서 조치를 취합니다(1~3).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지휘관들의 성품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있었고,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중에 뛰어난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읍은 넓지만 인구가 얼마되지 않기 때문에(4) 인구조사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감동으로 1차로 돌아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계보대로 등록을 합니다. 이 모습에서도 자신의 의를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다음으로 계보의 순서를 보면, 지도자들(7), 평민의 수, 성직자, 문지기들, 느디님사람들(허드렛일 하는 사람들), 솔로몬을 섬기던 심복들, 일반 백성 중 가문을 확인할 수 없는 사람들, 제사장 가문임을 증명하지 못하는 사람들,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의 총수(회중-42,360, -7,337, 노래하는 남며-245)가 나옵니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 보면, 하나님이 왜 느헤미야게 감동을 주셔서 계보를 찾아(에스라 2) 기록하게 했을까? 하는 질문을 해보게 됩니다. 느헤미야는 성벽재건이 최종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오늘 본문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무너진 이스라엘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최종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느헤미야 8장에 율법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모습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를 조직화한다는 것은, 공동체에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으로 통합하고, 자기의 역할을 알아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유기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 깨달음을 적용을 해본다면,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느헤미야는 순종했고, 물론 그전에 기도가 선행되었다는 것을 보게 되고, 계보대로 등록을 하면서, 자기역할 즉, 내가 현재 나의 자리에서 정체성을 일깨워, 방향을 제시하고 유기적인 공동체로 통합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아이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로 소망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겠다고 다짐하고 결단해 봅니다.

느헤미야 8장의 내용을 전문맥과 함께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포로생활을 한 지 70년 이후에 바벨론이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당시 페르시아 왕이었던 고레스는 유대의 포로들을 고향으로 돌아가게 허락했고, 첫뻔째 귀환할때 공동체를 이끌었던 지도자가 스룹바벨과 선지자 학개였습니다. 이때부터 어떻게 보면 예루살렘에서 드디어 예배다운 예배가 드려지게 된 것입니다. 성전이 완공 된 후 60년 후에 바사왕 아닥사스다 왕이 통치하던 시기에 포로들의 두 번째 귀환이 이뤄집니다. 이 두 번째 포로들이 귀환할 때, 에스라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에스라 7장에 자세히 나옵니다. 에스라의 귀환이 얼마 있지 않고 느헤미야가 유다의 총독으로 오게 되고, 그는 방해꾼들의 공작에도 불구하고 52일만에 성벽을 재건하는데 성공합니다. 오늘 본문은 성벽을 완성하고 일곱째 달에 이르러 백성들이 일제히 수문 앞에 있는 광장에 모여듭니다. 이들은 학사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기를 청했고,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낭독을 하며, 레위지파사람들은 백성들에게 깨달음을 주기위해 가르칩니다. 그 다음에 정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백성들은 율법의 말씀을 듣고 모두 깨달았고(8), 다 울었고(9),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 하였습니다(12) 그리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행하게 됩니다(17) 결국, 그들을 하나되게 했던 원동력은 '말씀'이었습니다. 본문의 상황을 보면서 우리 선생님들도 찬양과 말씀으로 하나되고 함께 크게 즐거워 하며 나누는 축제와 같은 TCF수련회를 떠올렸을 것 같습니다. 말씀안에서 하나되고, 말씀안에서 크게 즐거워하며, 말씀안에서 나누는 가족과 같은 공동체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귀하고 감사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PBS를 하면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백성들을 가르치는 리더의 열정(3), 명확하게 이해시킬 수 있는 리더들의 전문성(8), 나누워 줄 수 있는 리더의 섬김(10) 그리고 거기에 백성들의 기쁨이 더해지면서 '축제의 장'되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되게 하고, 말씀을 깨닫게 되고, 그 깨달음가운데 큰 기쁨이 있다는 것은 말씀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깨닫고 통회한 이날, 살찐 것을 먹으며 단 것을 마시고 서로 나누는 이날, 주 하나님을 기뻐하는 이날, 근심이 사라지는 이날, 우리의 모임이 항상 '이날'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보면 헌신하는 자들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남을 것인가? 갈 것인가? 과연 우리는 위험을 무릎쓰고 어디에 머물러 있어야 하나? 이스라엘 백성들과 그 지도자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전쟁의 위험으로 인해 생존의 위협을 느꼈을 텐데 그들은 왜 남아야 했을까? 하는 질문에 해석방향을 잡고 PBS를 해보았습니다. 남아있는 자들중에서는 자원해서 남은 자들도 있었지만, 제비뽑기를 통해서 남은 1/10의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비뽑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취했고, 누구도 될 수 있었던 상황에서 아무도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머물러 볼 수 있었습니다. 자원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성전을 버려두지 않겠다"라는 암묵적 동의가 그들에게 있었고, 뽑힌 그들은 순종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이시대에 기독교사로 살아가면서 예루살렘에 남기로 자원하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많은 짐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누군가는 남아서 그 일들을 자원해서 헌신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떠나는 자들은 "다행이다. 내가 뽑히지 않았어"라는 마음으로 떠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112절에 스스로 나선 사람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고 합니다. 그들 또한 어떻게 보면 헌신된 자들이었고 남아있는 자들에 대한 애뜻함이 느껴집니다. 앞으로 우리 공동체가 짐을 짊어지고 남은자들에 대한 격려와 위로가 넘치고, 부득이하게 함께하지 못한 선생님들의 공동체를 향한 애틋함과 진지함을 배려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복을 빌어주는 그런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시간이 지난후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어떤 문제냐 하면은, 전에 세운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하여 성전에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두는 방을 사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와서 "심히 근심하여"(8) 개혁을 단행합니다. 먼저 그 방을 정결하게 하고, 받을 몫을 받지 못해 도망간 레위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아 다시 제자리에 세웠고, 하나님앞에 정직하고 모두가 인정하는 충직한 자로 지도자를 세우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한 사람의 잘못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공동체의 정체성을 흔들어 버렸다는 점에서 우리는 경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그냥 간과하지 않고 편안한 관계를 파괴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공동체가 잘 되기를 바라며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할 줄 아는 느헤미야의 용기와 결단, 지혜와 분별력이 부럽고 도전이 되는 것 같습니다.

13장에서 느헤미야는 공동체성 회복을 위하여 안식일을 회복시킵니다. ,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예배가 필수적임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IVP주석을 보면, 영적성장이란 기억속에 인상이 남는 엄청난 성장과 성공이 아니라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오늘의 핵심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서 어떻게 예배를 회복시키고, 우리가 무엇을 할때 에너지가 생기고,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하나님의 관점에서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TCF공동체 가운데, 서로가 멘토가 되어주고, 지속적인 말씀훈련이 필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느헤미야 PBS를 마치면서 생각해 봅니다. 느헤미야의 고백중에서 "하나님 내가 한 일을 기억해 주세요"라는 고백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에게 내가 한일을 기억해달라는 고백은 아마도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였고 온 마음을 다해서 헌신하였기 때문에 그에게 이런 고백이 나온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는 사람에게 기억되기 위한 헌신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기억되기 위한 헌신을 했다는 점에서 그의 리더십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던 이유는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고, 말씀에 따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했고, 영혼을 사랑하게 했고,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게 했고, 믿음을 행함으로 보이게 한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느헤미야의 포인트를 정리하라고 한다면, "하나님을 기억하고 경외하는 마음"이라고 정리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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