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2일 묵상일기. 기분날씨 : 심난함.
어제도, 오늘도 선생님들과 함께 계속 회의를 하네요. 그러면서 우리의 부끄러움이 느껴지는 것 같아 괴롭고, 나또한 감당하기 힘든 상황인데, 아이들은 오죽할 까 하는 마음에 더욱 괴로워지는 하루인것 같아요. 루이스는 <<영광의 무게>>에서 이런말을 했어요. "하나님은 우리의 거듭되는 실패에는 무한한 자비를 베푸시겠지만, 계획적인 타협을 받아 주신다고 약속하신 적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것은 그분 자신뿐이며, 우리 영혼 안에서 자기주장의 의지가 물러나고 하나님께 자리를 내어드리는 만큼만 자신을 주실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거듭되는 실패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속에 좌절을 느끼는 것 같아요. 깊은 절망속에서 이것을 자각하는 사람이 구할 수 있는것이 부흥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부흥을 꿈궈요.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구해요. "사람이 사는 것이 이에 있고 내 생명도 온전히 거기에 있사오니 원하건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사려주옵소서" 바로 이 상태를 자각하는 것이 부흥을 꿈꾸는 상태가 아닌가 싶어요. 이찬수 목사님은 누릴 것 다 누리며 사는 것 같은데 자려고 누우면 뭔가 마음이 불안하고 불편하고 허전하다면 부흥이 필요한 상태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그리고 육안으로 보기에는 희망이 없는 것 같은데, 이미 죽은 것 같은데 살려주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을 회복하는 것, 이것이 부흥이라고 해요.
우리 학교 선생님 모두의 마음이 그러지 않나 싶어요. 고통의 끝은 어딜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바로 예수님이라는 마음이 들어요.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구세주 예수님은 인간의 고통을 없애주시기 위해, 고통의 끝이 되셨자나요. 그것이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말하는 '십자가의 도'이고요.
내가 부끄럽지만, 내가 고통중에 있지만,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나의 모든 문제와 상황을 가지고 나와 이제 고통과 나의 어려운 상황들은 나의 것이 아님을 믿음으로 선포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은혜임을 자각해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감당시키셨도다"(이사야 53장 5-6절)
주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며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요. 고통의 끝은 결국 우리 주님이시기에, 저 혼자 몸부림 친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요. 그래도 혼자서 해보겠다고 발버둥을 치지만, 저의 기승전결의 스토리는 뻔한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스토리가 솔직히 기다려지지는 않지만, 기대해봐요. 왜냐하면, 이러한 스토리들이 모아져 저를 새롭게 하고, 어제보다 다른 저를 다음어가는 주님의 손길이 느껴지니깐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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