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심은 나무 /달달한 묵상일기

나의 갈릴리를 그리며

복남진우 2016. 5. 8. 23:34


2016년 5월 8일 묵상일기. 기분날씨 : 좋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좋아하는 말씀구절들이 있어요.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것을 할 수 있느니랴' 라는 말씀이라든지,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라' 라는 말씀이에요. 단지 그 말씀자체로만 본다면, 능력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모든것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에 더이상 만족스러울 것이 없어보여요. 하지만, 분명 이 말씀에는 앞뒤문맥이 있다는 거죠. 사도바울은 고통중에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는 말씀을 하셨고,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고통 또한 기쁨으로 이겨낼 수 있음을 피력한 것이며,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나온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씀은, 18-19절로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즉, 피스메이커로서의 사명을 강조하신 말씀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정말 우리는 좋아하는 말씀만 가져다가 쓰면서 얼마나 많이 착각하고 사는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평소 이찬수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듣는데, 목사님께서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과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은 함께 연결해서 봐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왜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감격'은 알지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망각할때가 많기 때문이라고 하셨어요. 즉, 구원의 감격과 더불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기억해야 한다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망각하는 이유가 뭘까요? 사도행전 1장 3절에, '확실한 많은 증거로'라는 말씀이 있어요. 결국, 우리에게 확실한 증거들이 없기 때문인거죠. 그리고, 관심사가 다르다는 거에요. 하나님의 관심사는 사도행전 1장 3절에 '하나님 나라'에 있는데, 제자들은 사도행전 1장 6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회복'에만 관심이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부할하신 예수님앞에 철없는 질문이었어요.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초딩수준의 질문에 대해 반응해주셨어요. '그것은 너희가 알바가 아니다. 너희들은 나의 증인이 되어라'라고요.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 수준이 맞춰 주는 것 자체가 정말 은혜인것 같아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계속 교정 받으며 살아야 할 것 같아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증인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찬수 목사님은 사도행전 1장 8절에 나온 '지명이름'을 통해 설명해주셨어요.

 첫번째로 '땅끝'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해요. 확장성의 문제인데, 그리어의 <<담장을 넘는 크리스천>>이라는 책을 보면, "이대로 교회 안에서 숨어 있으면 공멸하게 될 것이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어요. 즉, 담장을 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거죠. 우리 학교에 적용을 해봐요. '담장을 넘는 학교' 우리들만의 학교가 아닌, 지역사회를 섬기는 학교가 되어야 한다는 거죠.

 두번째로, '예루살렘'이에요. 예루살렘은 제자들이 지금 현재 서있는 곳이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힌 곳이며 부할하신 곳이에요. 이 지명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끝을 추구하고 꿈꿔야 하지만, 지금현재 있는 그곳을 소중히 여기며 준비해야 한다는 거죠.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있는데, 수신제가가 안되면서 치국평천하를 논하지 말라는 거죠. 거대담론에만 이끌려 '선교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먼저 내 가정, 나의 이웃을 살펴봤으면 좋겠어요. 내 옆에 있는 이웃도 잘 섬기지 못하는데, 아프리카 난민들을 섬긴다는 것은 뭔가 말이 안맞는 것 같네요. 물론, 아프리카 난민을 돕고, 섬기며, 복음을 전하는 일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고요. 그래서, 지금 있는 그곳이 '땅끝'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훈련장소가 되어야 한다는 거에요.

 세번째로, '갈릴리'에요. 이곳은 제자들의 첫사랑이 있는 곳이고, 제자들이 무능력함을 깨달은 곳이기도 해요. 부할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보자'라고 말씀하신 것은 사명을 감당하기 전에 잃어버린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 같아요. 고기 한마리도 잡히지 않는 비참한 현장에서 주님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깨달으라는 거죠. 그리고 나를 만나주시는 예수님께 고백해야 되는 거죠.


나 : '비록 저는 연약합니다. 저는 넘어지고 또 넘어집니다. 또 실수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주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 : '진우야 네 양을 치라'


 예수님과의 추억을 떠올려 봐요. 예수님을 직접본 제자들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에요. 저는 예수님을 직접 본것도 아니고, 직접 음성을 들었던적도 없어요. 하지만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확신해요. 왜냐하면, 경험했기 때문이에요. 방향을 돌여 예수님을 향해 걷고 싶어요. 아니, 달리고 싶네요. 그 걸음이 무겁겠지만, 예수님을 향해 달리다가 넘어질 수 있겠지만, 예수님을 향해 자꾸 걷고, 달린다는 것, 그것이 신앙임을 깨닫게 되네요.

  옛날에는 아무것도 아닌죄들이 지금은 '견딜수 없는 고통'이 되어 버렸어요. 죄에 대하여 민감하여 졌다는 거죠. 실패한 인생을 회복하는 장소, '나의 갈릴리'를 그려봐요. 땅끝을 추구하며, 철저히 나의 예루살렘에서 은혜를 구하며, 첫사랑의 장소 나의 갈릴리를 추억해봐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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