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심은 나무 /달달한 묵상일기

고통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다

복남진우 2016. 4. 3. 18:08


2016년 4월 3일 묵상일기, 기분날씨 : 생각이 깊어짐.


 오늘 청년셀모임시간에 옛날에 봤던 "신은 죽었다"라는 영화를가지고 목사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았어요. 원래부터 관심있었던 주제였고, 최근에 어떤 한 교수님과 함께 '신의 존재'에 대해 논쟁을 했던 터라 더욱 관심이 있었어요.

 고통과 악의 문제는 옛날부터 생각해봤지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난감한 것 같아요. 특히, 믿지 않는 사람들한테 말이죠. 그리고 고통과 악의 문제가 단지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정신좀 차리라고 주신 거다"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하나님의 존재와 성경을 비약한 것 같고요. 그래서 이 풀리지 않는 주제에 대해서 계속 생각해보려고 해요. 저는 이순간 예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고통과 악의 문제에 대해 시원스럽게 정리하지 못할거에요. 왜냐하면, 고통과 악의 문제는 마치 빛이 있기 때문에 어둠이 존재하듯이, 하나님은 원래 선하시고 사랑이라는 속성 그자체인데, 우리 피조물의 타락으로 악과 고통이 생겨난거니깐요. 따라서 악과 고통의 문제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을거니깐요.

 우리에게 고통이라면 삶과 죽음사이에 결국 늙어가게 되고, 병드는 것, 갑작스러운 사고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옛날에도 묵상한적이 있는데, 강영안교수님은 고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했어요. "어디도 빠져 나갈 구멍이 없다." 어디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상태인거죠. 이말을 좀더 철학적으로 표현해보면, "나에게 매인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에서 오는 아픔"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해요.

 우리에게 고통이라는 것이 찾아오면, 먼저 웅크리게 된다고 해요. 그래서 스스로 다른 사람들을 피하게 돼요. 그런다음 그 단계를 지나면 다른사람들을 만나고 싶어해요. 그래서 내가 이정도 아프니깐 위로좀 해줘라는 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게 돼요. 그리고 자주자주 신음하게 되며, 한탄과 탄식, 불평과 호소를 하게 돼요. 그런다음 고통 받는 타인에게 관심을 품고 타인의 고통을 내고통으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해요.

 저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왜 고통을 주시는가? 하는 질문에 조심스럽게 이 단어를 이야기 해보고 싶어요. "연대를 위해서" 이 연대라는 것은 고통이 전제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것 같아요. 어떠한 대안을 세우려고 해도 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직면해야 하거든요. 이 직면하는 과정이 누군가에게는 고통이 될 수 있으니 말이죠.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하나된 의견'을 만들어 내듯이, 나에게 처한 고통은 연대를 통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함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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