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심은 나무 /달달한 묵상일기

죽음의 자리에 영광을 드러내시는 예수님

복남진우 2016. 3. 8. 21:16


2016년 3월 8일 묵상일기. 기분날씨 : 몸이 좋지 않은 것 같아 심난함.


 건강방송을 잘 안보다가 비염과 소장관련 영상을 보게 되었어요.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나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알레르기성 비염에서 만성비염이 되기 전 상태이고, 간과 소장이 좋지 않다라는 것을 대변과 소장의 색깔을 통해서 확인하게 되었어요.

 오늘 아이들과 함께 누가복음 19장 28-40절 말씀을 묵상했어요.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시는 중에 두 제자를 먼저 베다니 마을로 보내셨어요. 그리고 말씀하셨어요. "맞은편 마을로 가거라, 그 곳에 들어가면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 한 마리가 매여 있는 것을 볼 것이다. 그것을 풀어 이리 끌고 오너라."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순종해 아무도 타보지 않은 어린 나귀 새끼를 끌고 왔고, 예수님은 그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어요. 이것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한 기록된 예언을 성취하는 것이었어요.

 예수님께서 가실 때에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 길에 펼쳤어요. 예수님께서 올리브 산 비탈길 가까이 오셨을 때, 모든 제자들이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했어요. 그것은 이들이 여러 가지 기적을 목격했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어요. 그들은 예수님을 찬양했어요.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에게 복이 있다. 하늘에는 평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

 그러자 사람들 사이에 있던 몇몇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말했어요. "선생님 제자들을 꾸짖으십시오." 예수님께서 대답했어요.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를 지를 것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 모습을 불쾌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예수님을 죽이기로 유대지도자들끼리 정하였고, 예수님은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예루살렘으로 다시 가신거였어요. 그것도 화려한 입성이었어요. 그전에는 드러냄에 대하여 주의하시고, 때가 아직 이르지 않으셔서 피하기도 하신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보였어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의문이 들었어요. "죽을자리에 스스로 자신을 드러냄으로 갔을까?"하는 의문이에요. 예수님은 겸손과 평화의 왕이셨어요.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심을 보여 주시기 위해 다른 왕과는 달리 나귀 새끼를 탄 겸손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어요. 군림이 아닌 섬김으로, 혁명이 아닌 죽음을 통해서 말이죠.

 예수님의 그런 모습에 제 스스로 반성이 돼요.  나를 높여주는 자리에 드러내고 싶고, 내가 희생하고 헌신해야 하는 자리에 드러내고 싶지 않은 저를 되돌아 봐요.

 문맥상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중 일부였을 것 같아요. 이것은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인데, 시끄러움보다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죽음의 자리에 가는데, 이렇게 요란하게 가는 예수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리고 소리를 지르며 찬양하는 다른 제자들이 무지해 보였을지도 모르겠고요. 저는 누가복음을 묵상하면서 계속해서 느끼는 존재감이 있어요. 바리새인의 존재감이에요. 그들은 위선자였어요. 그들은 늘 주님께 책망받은자였어요. 그들은 늘 주님의 분노의 대상이었죠. 성경 어디에서도 그들의 잘함을 엿볼 수 없어요. 하지만 분명한건 그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고, 누가복음에 나오는 소외된자, 병든자, 가난한자들은 우리 사회에서 드러나지 않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몸부림 치며 살아가는 자들임을 깨닫게 돼요.

 주님을 찬양해요. "주님과 함께하는 이 모든 시간, 이 곳 평화가 있기를, 그리고 모든 시간, 모든 장소에서 주님의 이름이 드러나기를"



-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