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심은 나무 /달달한 묵상일기

2015년 10월 19일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자가 되어라

복남진우 2015. 10. 19. 16:08

 모든 사람은 이 땅을 떠나기 전까지 자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에게만 특별히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주셔서 우리는 어느 쪽을 선택하든 우리의 자유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생명도 있고, 사망도 있고, 저주도 있고, 복도 있습니다. 저주라는 것은 만사가 다 어그러지고 뜻대로 안되는 것이며, 사망이란, 육신이 죽는 것 뿐만 아니라 영혼이 죽은 영원한 죽음을 말합니다. 우리가 육체가 있는 동안은 마치 저주를 받는 것처럼 고난을 받습니다. 하지만 고난을 많이 당하고 모든 일이 참으로 어려울지라도 그 사람의 영혼이 축복을 받았다면 그는 저주받은 자가 아닙니다. 즉, 우리에게 갑자기 어려움이 닥치고 힘든 일이 생긴다 할지라도 그것을 저주라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떻게 인정을 받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사단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기를 주 하나님만 경배하고 그만 섬기라 하였느니라” 라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교훈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난을 받아도 영적인 유익을 얻기 위해 고난을 받아야 하고 영적인 유익을 얻기 위해서는 육체의 고난이라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얼마나 많은 희생과 수고를 하고 있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영적인 형통은 육적인 형통과 달리 이 땅에서 자기가 하고 자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잘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돕는 것을 말합니다. 육신이 돈을 벌기 위해서 한때 형통한 것은 불신자도 가능합니다. 그래서 비록 육신의 일이 안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영적으로 살아나는 것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아무리 세상에서 성공했다 할지라도 열매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무성한 잎이 아니라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은 하나님께 대한 간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형통한 사람은 세상에서 영광을 받아 보지도 못하고, 형통하지도 못하고, 저주받은 자같이 되었을지라도 영적으로는 매우 부유한 자입니다. 또한, 말씀 속에서 “나와 및 복음을 위함이라”는 것은 영적으로 주님께서 우리 영혼을 죄악 가운데서, 죽음에서 진리로 살리신다는 것입니다. 즉, 복음으로 살리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이 육신이 있는 동안에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입니까? 우리에게는 선택할 의지가 있어서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 의지에 따라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반드시 그에 대한 심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네게 자유 의지를 주었으니 네가 선택하되 저주를 선택하려면 하고, 복을 선택하려면 하라. 또 사망을 선택하려면 하고 생명을 선택하려면 하라. 그러나 내가 반드시 최후의 날에 심판히라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는 일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복과 생명을 택하고, 영적으로 성공하리라 결심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막혀도 영적으로 부유한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