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마가복음을 묵상하고 있는데, 어떤이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여 라고 부르는이가 있는가 반면, 어떤이들은 다윗의 자손 예수여 라고 부르는이가 있더라구요. 오늘 본문 마가복음 10장 46절에서 52절에서는 바디매오가 나오는데, 그는 예수님을 이렇게 불렀어요. 47절에 "나사렛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그는 소리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제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사람들이 그에게 조용히 하라고 엄하게 말하니깐, 더욱 크게 외쳐요. "다윗의 자손이시여, 제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그리고 예수님은 그에게 다가가 말씀하셔요. "무엇을 해 주길 원하느냐?" 그러자 바디매오가 "선생님, 다시 보기를 원합니다" 많은이들이 눈을 뜨고 다녔지만 예수님을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그냥 그저 나사렛에서 나온 능력자중 한명이구나 생각했지만, 보지 못하는 바디매오는 예쑤님을 자신의 구원자로 알았어요. 오히려 보지 못하는자가 복된거였죠. 그러고 보면, 정말 복된자가 누구일까?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많이 가졌다고 복된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을 부린다고 복된것도 아니고, 많은 이들을 자기를 존경하고 인정한다고 해서 복된것도 아닌것 같아요. 그리고 더욱 기도를 많이 한다고, 성경을 많이 본다고 해서, 예배를 다른사람들보다 많이 드린다고 해서 복된것도 아닌것 같아요. 더가진자 같고, 더누리는 자 같지만,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나라와 멀리 떨어져 사는지 모르겠어요. 편할수록, 안전할수록, 누릴수록 더욱 멀어지는 것 같아요. 하나님나라은 이 세상와 왜이리 반대인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거기에 숨겨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세상의 눈먼자가 되고 싶고, 세상의 귀머거리가 되고 싶네요. 그래야 예수님만 보이고, 예수님 말씀만 들릴테니깐요. 그럼 이렇게 혼란스럽지도 않을텐데 말이죠. 그냥그저 우리주님의 사랑에 감격스럽고, 감사하고 그럴텐데 말이죠. 뭔가 더 누리고 싶고, 편하고 싶어서 비교가 되고, 그래서 힘이 드는 것 같아요. 비교의식을 버리고 싶어요. 주님이 허락하시는데로 누리게 되면 책임감을 가지고 다른이들을 더욱 섬기고, 누리지 못하고 어려운생활이라고 한다면, 자족하며 아끼며, 내 수준에서 어떻게하면 다른이들을 더욱 섬길지, 내 노력으로 내 시간으로라도 섬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내 생명을 드리기 까지 주님을 위해 순교한 자들을 생각한다면 이건 아무것도 아닌것 같아요.어쩌면 지금이 하나님의 특별한 음성을 들을 때이지 않은가 싶어요. 힘들고, 부족하고, 외롭고, 공허하다고 느끼는 이때에, 어젯밤 공허함을 죄된본성으로 다스리려 했던 나에게 오늘아침 시편 94편 18-19절 말씀이 위로가 되네요.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그리고 기도해요. 앞이 캄캄한 상황속에서 빛이 되신 주님을 찾게 하시고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기도하며 애쓰는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늘 그 자리에 함께 하신 하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말씀충만, 기도충만, 찬양충만한 제가 되게 하옵소서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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