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담는 풍경/내 마음에 트윗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고마워요

복남진우 2017. 9. 10. 20:29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 나태주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하나님,
저에게가 아니에요. 
저의 아내 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이어요.
이 여자는 젊어서부터 
병과 함께 약과 함께 산 여자예요. 
세상에 대한 꿈도 없고 그 어떤 사람보다도 
죄를 안 만든 여자예요.
신발장에 구두도 많지 않은 여자구요. 
한 남자 아내로서 그림자로 살았고 
두 아이 엄마로서 울면서 기도하는 능력밖엔 
없었던 여자이지요.
자기의 이름으로 꽃밭 한 평 채전밭 한 뙈기 
가지지 않은 여자예요. 
남편 되는 사람이 운전조차 할 줄 모르고 
쑥맥이라서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여자예요.
너무 그러지 마시어요. 
가난한 자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저의 아내 되는 사람에게 
너무 섭섭하게 하지 마시어요.  
- 계간 <시와 시학> 2007년 가을호 -  
나태주 아내가 쓴 글 

너무 고마워요, 
남편의 병상 밑에서 잠을 청하며  
사랑의 낮은 자리를 깨우쳐주신 하나님, 
이제는 저이를 다시는 아프게 하지 마시어요.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죄로 한 번의 고통이 
더 남아 있다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것이라면, 
이제는 제가 병상에 누울게요. 
하나님, 
저 남자는 젊어서부터 분필과 함께 
몽당연필과 함께 산 시골 초등학교 선생이었어요. 
시에 대한 꿈 하나만으로 염소와 노을과 풀꽃만 
욕심내온 남자예요. 
시 외의 것으로는 화를 내지 않은 사람이에요. 
책꽂이에 경영이니 주식이니 돈 버는 책은 
하나도 없는 남자고요. 
제일 아끼는 거라곤 제자가 선물한 만년필과 
그간 받은 편지들과 외갓집에 대한 추억뿐이에요. 
한 여자 남편으로 토방처럼 배고프게 살아왔고, 
두 아이 아빠로서 우는 모습 숨기는 능력밖에 
없었던 남자지요. 
공주 금강의 아름다운 물결과 
금학동 뒷산의 푸른 그늘만이 재산인 사람이에요. 
운전조차 할 줄 몰라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닌 남자예요. 
승용차라도 얻어 탄 날이면 꼭 그 사람 큰 덕 봤다고 
먼 산 보던 사람이에요. 
하나님, 
저의 남편 나태주 시인에게 
너무 섭섭하게 그러지 마시어요. 
좀만 시간을 더 주시면 아름다운 시로 
당신 사랑을 꼭 갚을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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