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7일 유종의 미
기독교사모임때에 창세기 48장 8절에서 22절 말씀을 본문으로 "유종의 미"라는 설교를 들었어요. 야곱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130년간 살았던 야곱의 인생은 말그데로 "고난이었고 고통"이었어요. 야곱이 바로왕앞에서 고백하기를 "험학한 삶을 살았습니다"라고 고백을 하는 대목에서 알 수 있어요. 자기 형에게 죽임을 당할지 몰라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고, 외삼촌 라반에게 속아 넘어가기도 하고, 사랑하는 요셉까지 죽은줄 알고 일평생을 살았기 때문에 그래요. 흔히 나이가 많을 수록 회심율이 낮다고 해요. 왜냐면, 자신의 것을 더 많이 내려놔야 하니깐요. 제 나이에 이말이 공감이 안되지만, 나이가 들면 정말 그럴것 같아요. 그래서 고상한 말로 자신만의 철학이 생기는 법이니깐요. 야곱도 자신만의 철학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하나님앞에서는 고집일 수 있는데, 하나님이 주시고자 했던 배우자는 레아 였어요. 하지만 야곱은 라헬을 끝까지 고집했고, 이에 라반은 야곱에게 악한 짓을 했어요. 일부이처제의 비극의 시작이었죠. 형제들간의 갈등이 생겼고, 심지어는 요셉을 죽음으로 내모는 상황까지 발생하게 되었자나요. 야곱은 본인의 인생을 자초한거였어요. 그것을 130년이 지나서 깨닫게 된거죠. 제나이 서른 초반대지만, 이 진리를 빨리 깨닫게 되어서 감사해요. 하지만 저의 인생도 어떻게 흘러갈지 잘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늘 조심스러운 것 같아요. 얍복강나루에서의 씨름을 통해 야곱은 또한번 깨다ㅏㄷ게 돼요. 자기머리로는 절대 안되겠구나 하는 것을요. 그리고 이후 에서를 다시 만날 때 맨 앞으로 나가 형 에서를 만나게 돼요. 여기서 에서의 마음을 바꾼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돼요. 하지만 야곱은 하나님이 약속해주신 땅으로 갔어야 하는데, 가다가 세겜땅에서 머물러 버려요. 말씀을 전하신 목사님께서는 그런 야곱을 "철이 안든 신앙인이다"라고 표현하더라구요. 하나님은 야곱을 계속해서 보호하시지만,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을 좆아가다가, 어느정도 편해지만 자기힘으로 살다가, 다시 힘들어지만 하나님께 나아가고를 반복했던 거였어요. 야곱은 죽은줄로만 알았던 요셉을 다시만나고 나서 나머지 17년을 제대로 살았다고 해요. 이제야 철이든거죠. 화려한 문화가 내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계봉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죠. 자기가 정확히 어디에 묻혀야 할지를 알았다는 점에서 알 수 있었어요. 48장 16절을 다시보면,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셨다"라고 하나님이 주어가 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요. 이전까지는 아니었거든요. 자신이 주어였어요. 성숙한 신앙인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라고 해요.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것은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라는 거죠. 야곱이 요셉을 불러서 요셉의 두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장면은 야곱이야기의 백미라고 해요. 원래 첫째를 먼저 해주고 둘째를 축복해줘야 하는 건데, 교차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기준은 사람이 생각하는 기준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정말 멋진 장면이 아닐 수 없는 것 같아요. 사회적인 기대와 보편적인 기준, 도덕적 기준으로 사람들은 판단하고 축복하는데, 그것을 초월하는 하나님을 인정한다는 의미로 해석이 되니깐요. 야곱은 아마도 진정한 회개가 담긴 상징적인 행위였던 것 같아요. "남은 인생은 이렇게 살지 말아야 겠다. 그러니 바꿔야 겠다"라는 결단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날마다 새로워지기를 소망해요. 한걸음이라도 나아가고 싶어요. 조그만한 변화를 맛볼수만 있다면 도전하고 싶네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