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2일
오늘은 선생님들과 오랜시간 이야기를 나눈것 같아요. 이야기의 핵심은 '관계'였어요. 그리고 주된 관심은 학부모님과의 관계인데, 학부모님과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하향적 관계일때가 많은 것 같아요. 여기서 고민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우리의 수준은 10이라면, 학부모님의 수준을 5로 보고 학부모님들께 10으로 올라오라고 하면 안된다는 거죠. 반대로 학부모님의 수준이 10이고, 우리의 수준이 5인데 학부모님들께 5로 내려오라고 할 수 도 없는 거죠. 계속 치환해서 생각해봐도 똑같아요. 결국 하향적 관계가 되어버려요. 누군가가 희생하고 내려오던지, 아니면 누군가가 올라가던지 해야하는 거죠. 원인은 알겠는데,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기 원하시는 분인데, 거룩한 삶이란 단순히 점잖고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삶이 아니라 죄악된 세상이 요구하는 가치관에 따르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삶으로 표현하며 사는 것임을 보게 돼요. 베드로는 산 소망을 품은 그리스도인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해주고 있는데, 한 점의 죄도 없으신 예수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이전과 다르게 살아야 한다고 해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었고, 새로운 소망을 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우리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소망을 보고 싶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한 정착 초기에 백성들이 얼마나 바른 신앙을 갈망했는지 볼 수 있어요. 여호수아가 두 지파 반을 돌려보내면서 넘치도록 그들에게 축복을 해줘요. 그리고 그들에게 많은 재산을 주면서 나눌 수 있게 해주었고요. 요단을 건넌 두 지파 반은 강가에 요단 양편에 볼 수 있는 커다란 모형 단을 쌓아요. 이것은 요단 서편 후손들로 하여금 동편 후손도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언약의 백성임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어요. 이러한 선한의도로 세웠지만 다른 지파와 의논하지 않고 성급하게 이 일을 시행함으로 혼란을 야기했어요. 다른 아홉지파 반은 즉시 실로에 모여서 두 지파 반을 치러 가자고 했던 거에요. 서편 지파들이 분노한 것은 실로에 하나님의 제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제단을 쌓는다는 것은 우상숭배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어요. 이 모습속에서 가나안 정착 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바른 신앙을 갈망했는지 볼 수 있어요. 자신과 자신의 후손들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게 하려는 목적으로 단을 쌓았고, 그 모습을 보던 다른 지파사람들은 신앙의 순수성을 수호하기 위해 한때 함께헌신하였던 형제들과의 싸움도 불사하겠다는 결의를 가진거였고요. 이처럼 우상숭배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게 대적하였는지를 보게 돼요. 바로 이 초심을 끝까지 지켰더라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달라졌을텐데 말이죠. 공동체 안에서 관계를 세우는 일이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힘든일임을 깨닫게 되면서, 어떤일이든 하나님께 최고의 자리를 내어드리고, 지속적인 소통이 필요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네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