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30일 주님을 보게 하소서
하나님의 음성은 매우 잔잔하고 작다고 해요. 우리 주변의 다른 목소리들이 너무 크고,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해요. 특히 이 혼미하고 소란스러운 시대에 우리마음은 라디오와 같다고 해요. 가까운 방송국에서 오는 하찮은 메시지 때문에 멀리서 오는 중요한 메시지를 듣지 못하는 것이죠. 내가 지혜로울 수록 극속한 것의 무한한 중요성을 깨닫게 될텐데 말이죠.백만분의 1로 압축하는 기술, 가장 섬세한 빛의 파동까지 정복하는 기술, 우주에서 가장 작은 것들을 이해하고 마스터한 결과물들, 우리에게는 이러한 기술과 결과물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아주 섬세한 음성에 주의를 기울일 줄 아는것에는 부족함이 많은 것 같아요. 어제 선생님들과 함께 누가복음 18장 35-43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여러 의미있는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무리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보는"장면에서, 세상속에서 살면서 세상의 소리라고 다 지나쳐버리면 안되겠다는 깨달음이 왔어요. 바디매오는 세상속에서 구걸하던 거지였고, 사람들이 하는 소리들을 들었어요.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가 지나간다고"말했지만, 바디매오는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그 소리를 자신의 고백으로 바꿔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외쳐요.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복음서에서 처음 등장한다고 해요. 그리고 나중에 빌라도 앞에서 "너는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냐?"라는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을 하고요. 그렇게 바디매오는 세상의 소리를 듣고 분별하여 주되심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와요. 아무것도 보지 못한이가 말이죠. 예수님은 그런 바디매오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고 물어요. 당연히 눈뜨기를 바라시는 줄 아셨을 텐데 그렇게 물어보신 주님의 의도가 궁금했어요. 하지만 바로 알 수 있었어요. 주님은 바디매오의 눈을 고쳐주시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기 보다는 바디매오의 간절함, 주님을 보기 바라는 간절함을 보셨던거에요. 그래서 어쩌면 바디매오는 눈을 들어 주님을 간절히 보기 원했던 것 같아요. "나를 구원하신 나의 주님을"말이죠. 감동이 몰려 오는 것 같아요. 주님을 보기 원했고, 주님과 만나기를 원했고, 그 만남이 이뤄지는 순간이 그려지는 것 같아요. 그 감격은 어떠했을까요? 아마도 이루말할 수 없는 큰 기쁨이었을 것 같아요. 바디매오에게는요. 그래서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고, 아마도 초대교회를 세우는 기둥이 되었을 것 같아요. 어쩌면 여기서 우리는 제자도의 본질을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요. 내생각, 내 뜻을 내려놓고 주님앞에 엎드려 주님의 음성을 기다리며 나를 부르실때 겉옷을 내던지고 주님께 달려가는 것. 오늘하루도 고백하고 싶어요 "Lord" 주님을 보게 하소서. 주님을 보게 하소서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