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9일 생존의 삶에서 중보자의 삶으로
오늘 기독교사아웃팅에서 말씀을 들었어요. 주제는 생존의 삶에서 중보자의 삶으로 라는 주제였고, 말씀의 배경은 창세기 19장 롯의 이야기였어요. 창세기 19장에 대한 상황을 이해하려면 전문맥과 후문맥을 같이 봐야 해요. 전문맥에서 아브라함에게 세 천사가 나타나요.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이삭의 탄생을 알리고,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심판을 알려요. 20절에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그러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요청해요. 처음에는 그 성에 의인오십이 있으면 구원해 달라고, 그러자 하나님은 그렇게 하겠다고 해요. 그리고 사십인이 있으면 구원해 달라고 해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역시 멸하지 않겠다고 해요. 더나아가 삼십인일때, 이십인일때, 십인일때도 멸하지 않겠다고 해요.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을 당하게 돼요. 그만큼 의인이 없었고 타락의 끝을 보여주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어 본문의 상황이 전개가 돼요. 두 천사가 소돔과 고모라에 이르자 롯이 보고 일어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자기집으로 청해요 이것은 아브라함과 동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에요. 그만큼 롯은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하고 거기서 살고 있지만, 의식만큼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은 희미하지만 신앙인이었고, 하나님의 믿는자에 대한 의식을 버리지 않은 거죠. 즉, 흔적만 남이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아요. 그가 아브라함 공동체를 떠난이유를 보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복에 겨워서 떠났거든요. 양때들이 너무 많이 늘어나자, 아브라함이 롯에게 말하죠. "네가 어디를 가고자 하느냐?" 그렇게 아브라함의 양보로 롯은 기름진 소돔과 고모라로 가게 되었고, 아브라함은 가나안땅에 머물게 된거에요. 아마도 아브라함 공동체에서 롯은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메시지를 받았을 텐데 왜 소돔과 고모라로 가게 되었는지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여하튼 소돔과 고모라의 상황은 정말 최악이었어요. 밤에는 환락의 도시였고, 쾌락의 끝을 보여줬어요. 이성간 성관계를 떠나 동성간의 성관계를 원하는 정도였으니 말이죠. 요즘 동성애법을 통과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나고 있는데,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인것 같아요. 소돔과 고모라의 끝을 보여주고 있는듯 해요. 쾌락적인 탐닉의 양상을 보여준거죠. 더 큰 쾌락으로 전진하려는 인간의 죄된 본성이 그데로 드러난것 같아요. 롯은 소돔과 고모라에 있으면서 생존하는 그리스도인이었어요. 아브라함은 그런 롯을 위해 중보했던 자였고요. 하나님과 소통하는 기도자가 되고 싶어요. 이것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기를 원해요. 이것이 중보자의 모습이 아닌가 싶어요. 누군가가 있을 때, 그 자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 그리고 이 메시지를 통해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지 여쭤보는 것이 중보인거죠. 29절의 말씀을 보면서도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롯의 구원은 아브라함의 기도덕분이었어요. 따라서 생존만 급급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들에게 너희들을 사랑한다는 하나님의 뜻이 흘러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중보해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