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구분야/기독교세계관교육

기독교 세계관으로 본 노아 영화

복남진우 2014. 3. 31. 12:23

 

영화 [노아] 후기 (* 주의 : 본 글은 영화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I. 개봉일에 급하게 관람한 이유

학생들에게 기독교세계관을 가르칠 때,
성경이 우리에게 오는 매체로서의 방식은 이야기라는 것을 강조해 왔다.
마침 헐리웃 영화 [노아]에서 성경의 내용을
금세기 가장 탁월한 영상 매체인 영화로 푼다고 하니 안 볼 수가 없었다.

적극적으로는 별 무리가 없다면, 학생 단체 관람도 고려할 겸, ...
근무 시간에 교장 선생님의 허락을 받고 상영관을 찾았다.


II. 신앙이라는 불순한(?) 의도로 영화보기

관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신앙적 관점으로 영화를 보자
초반부터 몇 가지 문제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선, 노아가 아버지 라멕으로부터
축복을 받는 장면에서 사용된 뱀껍질(가죽이라 말할 수 있나?)...
유태인들의 '테필린'을 떠오르게 하는 이 장면이 생뚱 맞았다.
끝까지 보니 이 '뱀껍질'은 영화 내내 중요한 상징물로 다뤄지고 있었다.

그리고 '초하르'라는 에너지 농축된 광물질도 어색했다.
어색을 넘어 황당하게 만든 것은 이 '초하르'라는 것이
뭔가 중요한 역할을 할거 같았는데 기대에 못 미쳤다는 점...
아마 '불'을 만들기 위한 도구로 설정된 단순 소품인 듯 하다.

셋째는 영화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감시자(돌거인)'들...
성경 속 '네피림(창 6:4)'을 영화화 한 것 같은데
인상 깊은 비주얼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이 영화의 장르가 판타지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노아의 방주 건설을 돕기 위해 설정된 캐릭터인가?
영화에서는 방주를 10년만에 지었다라고 되어 있는데
10년 만에 이 거대한 방주를 노아와 그 가족들만의 힘으로 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니 초인적인 도움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생각한 듯 하다.

이렇게 불순한 의도로 영화를 보고 있다가
내가 [벤허]나 [십계]를 보러 온 것이 아님을 깨닫고
가급적 순수한 마음과 열린 마음으로 영화를 보기로 마음을 잡았다.

그리고 나름 노아의 이야기를 매끄럽게 하기 위해
창작의 고통을 감내한 감독의 수고에 박수를 보냈다.

III. 어떤 점에서 은혜를 받았나?

그렇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은혜를 받았다. why not?

1) 선과 악의 분명한 대립 구조

선을 상징하는 주인공 노아와 악을 상징하는 두발가인(창 4:22)의 캐릭터 대결
물론 후반 노아의 캐릭터가 조금 변형되긴 하지만
노아와 두발가인은 창조주의 뜻에 따라 사는 것과 그에 맞서는 것이라는
분명한 선악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이 두 사람이 동시대 사람인지는 따져보지 않겠다.

2) 남은자 사상(Remnant)

노아의 가족이 타락한 세상에 남은 마지막 신앙인들이라고 해석한 점.
세속에 물든 현재에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보여준다.

3) 방주의 의미

훌륭한 설교 보다도 영상을 통한 전달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방주는 교회의 상징이다.
교회 공동체가 난파선의 사람들을 구조하는 '구조선'이 아니라
거대한 '방주(건물 크기가 아니다)'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잘 표현해 주었다.
각종 동물들이 방주에 들어오는 장면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물론 '뱀'들도 각기 종류대로 방주에 들어온다.
즉, 피조물인 '뱀'이 사탄의 화신이 아님을 말해준다.

4) 가정의 중요성, 축복의 통로

신앙이 아버지에서 자녀로 전수된다는 것은
기독교인들에게 큰 의미를 준다.
신앙은 가족 안에서 대물림 되는 것이다.
기독교교육의 핵심적 의미를 영화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5) 창조 속에 청지기의 삶

상당히 기독교세계관을 잘 반영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노아의 가족들에게는 이 세상에 남은 동물들을 보존해야 하는 사명이 있었다.
영화에서 이 주제는 여러번 강조된다.
교회를 상징하는 '방주'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
곧 청지기적인 삶임을 잘 표현하고 있다.


IV. 어떤 점이 성경과 다른가? 또는 성경과 반대되는가?
다르지만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위에 언급한, '뱀껍질', '초하르', '감시자' 등
성경을 펼쳐 놓고 영화를 보면서
상징이나 캐릭터의 비성경적 요소들을 찾으라면 너무 많고해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중심으로
어떤 점에서 성경의 의도(전통적인 해석)와 다른지 살펴보았다.

1) 노아 가족의 구성

감독이 가장 많이 재구성을 한 것이 노아의 가족 구성이다.
창 6:18, 7:13에서는 방주에 들어간 자들은
노아, 그의 아내, 세 아들들, 세 며느리들이다.
그렇다면 둘째 아들 함도 결혼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영화에서는 홍수가 일어날 때까지 함이 미혼이었으며
그의 결혼 문제가 큰 갈등의 씨앗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갈등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해 가족 구성을 재구성한 것으로 여겨지고
이러한 구성은 둘째 아들 '함'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전달해 주는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영화 속 함의 역할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언급된다.

2) 노아는 남성 권력과 교회 권력의 상징

창 6:9에서 표현된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이며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훌륭한 노아를 폄하시켰다는 이유로
영화 [노아]를 비판하는 사람의 글도 읽어보았다.

이러한 비판적 시각만 갖고 있으면
영화에서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보기 어렵다.
감독은 노아라는 인물을 전형적인 가부장으로
즉 남성 권력을 상징하는 인물로 묘사한다.

이것은 문제의 해결자 속에 또 다른 문제를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이 세상이 남성 중심의 권력으로 왜곡되었다는
일부 페미니즘의 주장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 인물의 이러한 해석은 신선하고 도전적이다.

특히, 교회를 상징하는 ‘방주’와 그 리더십인 아버지 ‘노아’
그 남성 권위자의 소통 부재는
현재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시사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영화 속 노아는 의인도 완전한 자도 아니다.
오히려 갈등하고 고뇌하는 인간으로 그려진다.
문제 해결자가 또 다른 문제로 넘어진다.
이를 누가 구원할 것인가?

3) 여성 ‘일라’라는 새로운 리더십의 등장

첫째 며느리인 ‘일라’(엠마 왓슨 분)는 노아와의 갈등을 겪으며
영화 절정부에 새로운 대안, 새로운 리더십으로 부각된다.

이 영화가 급진적이고 전통적인 성경해석을 떠나
완전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 것은
아버지가 갖는 자녀의 축복권,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이 축복권이 남자 중심의 아버지와 아들로 대물림되던 것이
노아 이후로 첫째 아들 셈이 아니라,
며느리인 ‘일라’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더불어 ‘일라’는 성경에는 전혀 기록되지 않은 여자 쌍둥이를 낳는다.
성경의 족보에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여자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는다.
성경이 당시 남성 중심적 문화 속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영화는 홍수 이후 인류는 새로운 어머니 ‘일라’와 두 딸들을 중심으로
번성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감독의 해석은 상당히 현대적이고 파격적이다.
(물론 비성경적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 중요한 포인트는
홍수까지는 가장인 노아가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는 주체였다면
홍수 이후에는 일라가 해석하고
노아마저 일라의 해석을 따르게 된다는 점이다.
남성 권력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고 있는 성경 해석이
여성에게도 분가된다는 점은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4) 함은 삶에 대하여 개척적이고 도전적인 인물로 표현

둘째 아들 함은 상당히 중요한 역할로 재탄생 되었다.
성경에 기록된 부정적인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그는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하고
선과 악을 대결구도로 보지 않고 둘의 공존을 지향한다.

영화 종반부에 가족을 두고 떠나는 것은
인류의 개척정신 또는 이성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버지 노아와의 갈등 관계 속에서
오히려 함은 일라와 신뢰의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일라와 함은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중심 주제를 전달하는 캐릭터이다.
즉 홍수 이후, 새로운 세상에서 인류는
남성 보다는 여성의 리더십으로,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종 보다는 회의와 도전으로
그리고 미래를 자신의 의지로 개척해야 하는 독립적 인간상을 보여준다.

V. 과대 해석(또는 반응)에 대한 우려들

몇몇 크리스천들이 영화에 대해 기대했다가
막상 보고 나서 비판자로 돌아선 것을 보게 된다.
기대는 자유지만, 문화에 대한 편협되고 왜곡된 시선들이 거북하다.
과대적 해석(또는 반응)에 의한 대표적으로 잘못된 비판들은 다음과 같다.

1) ‘뱀껍질’이 사탄의 상징이다?

노아의 아버지, 라멕이 노아를 축복할 때 왼손에 ‘테필린’처럼
뱀 껍질을 휘감고 있었는데 영화 내내 주요한 상징물로 등장한다.
이 뱀 껍질은 처음 하와를 유혹한 사탄이 쓴 것으로
사탄을 상징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다소 무리한 해석이다.
사탄은 껍질을 이용해 하와에게 접근했던 것이지
뱀 껍질 자체가 사탄이 될 순 없다.

사탄이 인간이 유혹하기 위해 사용한 것,
므두셀라가 의미를 갖고 오랜 기간 동안 가지고 있었으나 별 의미가 없었던 것,
잠깐 함이 갖고 있다가 슬럼프에 빠진 아버지 노아에게 돌려 준 것,
노아가 손녀들을 축복할 때 신비한 빛을 발현한 그 것...

뭘 상징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지혜(또는 이성)’를 상징한다고 본다.
이것은 쓰임에 따라 죄악이 될 수도 언약을 이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2) 의인 노아는 완전무결한 사람?

영화 중반까지 묵묵히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던 당대의 의인 노아는
홍수 이후 극심한 슬럼프(신앙적 회의)를 겪는다.
노아가 포도주에 만취해 발가벗고 잠든 이유도 이 슬럼프 때문이다.

이에 당대의 의인을 폄하시켰다며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영화적으로 재구성한 캐릭터에 대해 잘못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창작물로서의 영화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이다.

3) 감시자(타락천사)의 타락과 구원은 이단적 요소이다

상상의 산물인 영화를 두고 이단 규정을 하는 것은 넌센스다.
판타지적인 요소를 이단으로 본다면,
인류사의 최악의 이단은 톨킨과 루이스이다.

4) 이건 정말 쓸데 없는 노파심인데...

노아의 두 쌍둥이 손녀의 탄생을 동성애라고 오버하는 일은 없기를..
정말 없길...
[겨울왕국]의 자매의 사랑을 동성애로 읽어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6-_-;;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과 맺은 언약을 기억나게 하기 위해 ‘무지개’를 주셨다.
동성애의 상징으로 과대 해석할까 심히 우려된다.


VI. 남은 과제(결론)

영화 [노아]를 긍정적으로 읽어보자.
세상을 향한 그리고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고 교회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

1) 기독인이 세상과 소통하는 법

성경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무신론자에게
다짜고짜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마녀사냥이다.
그가 잘못 이해한 것은 무엇이고,
왜 그렇게 해석을 했는지 관심을 가져보자.

2) 세상에 대한 비판에 귀를 기울이는 것

영화 [노아]는 두발가인을 통해 타락한 권력의 위험성을 말하고 있다.

3) 성경 해석에 대한 열린 자세

성서 해석에 대한 탄력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너무 전통적인 해석으로만 제한하지 말고
거룩한 상상력으로 풍성한 성경 해석을 누려보자.

4) 언약의 갱신, 오늘날 ‘방주’의 의미

방주를 통해 우리의 교회와 신앙공동체를 돌아보자.
하나님의 주신 이 세상을 잘 가꾸며 보존하고 있는가?
그것을 위해 청지기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

무엇보다 각자가, 그리고 소속된 신앙 공동체가
난파된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기에 급급한 구조선이 아니라,
난파되지 않을 든든한 방주가 되길 바란다.

- 끝 -

 

(출처 : 박광제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