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심은 나무 /달달한 묵상일기

사명이 주는 외로움 자발적 고독의 자리로

복남진우 2019. 3. 25. 06:33

2019년 3월 25일 묵상일기


 매일매일 쓰던 묵상일기를 이제는 어쩌다가 쓰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네요. 그만큼 저의 나태함일까? 하는 반성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여유없이 하루하루를 살아냈던 저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되네요. 요즘 목사님의 말씀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야곱이에요. 야곱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변화 되었던 인물이죠. 모든 고뇌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감으로 단단해진 야곱을 보면서, 저를 묵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목사님의 말씀속에서 "선물보다는 진심이 에서의 마음을 돌이켰다.", "존재가 물질보다 앞서야 한다." 이말이 가장 와닿는 것 같아요. 선물을 통해서 정치하는 사람들은 저는 언젠가 한계를 드러낼 거라 봐요. 여기서 저는 잠시 "그럼 나는 진실된 사람인가?"하는 질문을 던져보게 되네요.

 헨리나우웬의 <<삶의 영성>>을 보면, 고독의 제자도가 나와요. 1단계가 고독의 제자도로 하나님과 단둘이 있는 영성이고, 2단계가 공동체의 제자도로 서로 약한 모습을 받아들이는 영성이고, 3단계가 사역의 제자도로 고통의 자리에 찾아가는 영성이라고 해요. 예수님의 삶을 보면 맞는 것 같아요. 마가복음 1장을 보면, 예수님은 가르치시고, 고치시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어요. 그리고 저물어 해 질때에 점점 사람이 많아졌는데, 예수님께서는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 하신 모습을 찾을 수 있거든요. 즉, 자발적 고독의 자리!! 의도된 고독의 자리!!로 가신거죠. 예수님은 무엇보다 이것을 중요하게 여기신 것 같아요. 성경 여러곳에서 이런 장면을 쉽게 찾아 볼 수 있거든요.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유명해지려는 순간 제자들을 재촉하시면서 빨리 그 자리를 떠나시려는 모습도 찾을 수 있거든요. 왜? 그럼 예수님께서는 의도된 고립을 자초하셨을까?를 생각해보면서 자연스럽게 건강한 공동체를 묵상하게 되었어요.

 요즘 저는 "공동체란?" 이 질문에 계속 빠져 있어요. 기독교대안학교가 지금은 시작 단계이고, 계속 공교육의 대안으로 뭔가 면역력을 키워나가야 할 때인데, 우리에게는 '무엇'이 있을까?를 계속 생각해보게 되거든요. 수업의 방법을 공교육의 대안으로 내세우기에는 공교육에는 빵빵한 예산을 들여 수업의 방법과 수업의 혁신을 이뤄내고 있고, 학생중심의 교육과정 또한 정부 방침이 되어 교사가 학생들의 인권을 계속 수정중에 있고요. 물론 입시교육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 여전히 교사를 하나의 안정된 직업으로만 생각하는 교사들이 많다는 점은 분명한 차이로 보이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럼 대안이 무엇이냐?라고 저에게 물어 본다면, "공동체"라고 대답하고 싶거든요. 수업공동체, 교사공동체, 교회-학교-가정 연합의 공동체가 저는 그 대안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공동체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아직도 선생님들의 희생과 헌신이 없이는 안되기에 멀게만 느껴지네요. 하지만 포기할 수 없겠죠. 왜냐하면, 다음세대를 세우는 교육 또한 우리의 사명이니깐요. 그래서 가끔 엄청난 외로움을 경험할 때가 많아요. 그럴 때마다 '자발적 고독'으로 들어가야함을 깨닫게 돼요. 먼저 개인이 건강해요 사회가 건강하듯이 말이죠. 그리고 장래의 소망(꿈)으로 채워가기를 소망해요. 원래 작은자들이 모여 꿈을 꾸는 것이라는 어떤 목사님의 말씀이 와닿네요. 그러면 때가 되면 이 일을 지체없이 이루시는 하나님이 우리 곁이 이미 계시니깐요.(이사야 60장 22절) 

 사람을 의식하며, 사람의 사랑을 갈망하다 보면 그 사랑을 계속 증명받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때문에 실족하게 되는 것 같아요. 여전히 저의 현실은 육아와 수업과 대내외업무로 인해 바쁘지만, 그 사명이 주는 외로움을 고독의 자리에서 주님과 교제함의 기쁨으로 채우며 오늘도 주님과 함께 꿈꾸며, 저를 공감해주고 믿어주는 몇몇 동역자들과 함께 꿈꾸며 오늘도 살아내기를 기도해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쌤^^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