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전적인 위탁
2018년 5월 27일 묵상일기
로마서 12장 19절 말씀에 "너희가 친히 원수을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라는 말씀이 나와요. 나를 힘들게 하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봐요. 거의 없을 것 같아요. 저 또한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복수 하지는 않을 수 있지만,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는 자신이 없어지네요. 결국, 불가능 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성경에서는 그 불가능한 것을 도전하라고 말씀하시니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뇌가 생기네요.
시편기자의 고백을 묵상해봐요. "내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미움을 제거 하는 것이 결국 이 세상을 이기는 길임을 기억하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결코 내힘이 아닌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또 인정하게 되는 것 같아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제작한 맬 깁슨 감독에게 유대인들이 찾아가서 물었데요. 우리가 예수님을 죽인거냐고? 그러자 맬 깁슨 감독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해요. "당신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을 죽인겁니다." 이사야 53장 5절의 말씀처럼 우리의 죄악과 허물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의사가 병든자를 위함이듯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눅5장31-32)고 말씀하셨어요. 주님께서는 우리의 의로움과 자랑이 아니라, 허물과 연약함을 보신거죠. 나같은 죄인을 살리려, 나같은 죄인을 부르신 예수님의 사랑에 할말을 잃게 되는 것 같아요.
'안식' 그리스말로 '아나파우소'라고 하는데, 주님의 초대를 뜻한다고 해요. 그리고 그 초대에 응하고 주님안에 있는 것이 참된 안식의 뜻이라고 해요. 즉, '전적인 위탁', '전적인 항복'이 안식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거죠. 그래서 참된 쉼과 안식은 하나님꼐 우리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길 때 되는 거죠. 사람과 환경과 상황과 운명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새롭게 하심에 전적으로 의지할 때 비로소 참된 쉼을 누릴 수 있음을 깨닫게 돼요.
깨어진 세상속에서 관계의 고통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 같아요.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사람이라면 모두에게 있을거에요.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주고받아야 하는 사랑을 일방적으로 받으려고만 하거나, 일방적으로 주려고 하면 결국 관계는 깨지고 말죠. 저 같은 경우는 학교에서 쉬도때도 없이 아이들이 찾아와서 하는 말이 "누가 누가요 이랬어요 저랬어요, 누구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라는 말을 해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교사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커지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그럴 때마다 아이들의 그 관계의 문제가 교사의 개입이 없이는 안되는 것 처럼, 하나님의 개입이 없이는 안되는 것임을 저 또한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분주한 하루하루 속에서의 쉼은 하나님앞에 나아와 "내 뜻데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데로 하소서"라고 고백하는 완전한 위탁(맡김)이 있을때 가능함을 묵상하게 되네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쌤^^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