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을 묵상하며 내린 최종결론
2016년 6월 21일 묵상일기. 기분날씨 : 좋음.
아이들과 함께 31장 말씀을 묵상했어요. 좀더 깊이 묵상해봤는데, 사무엘상에서의 긴장은 사울의 죽음과 함께 해결돼요. 아이들의 묵상집을 보면, '용두사미'라는 고사성어가 나오더라구요. 사울의 죽음이 '용두사미'라는 거죠. 용두사미라는 고사성어를 해석해보면, 처음좋으나, 끝이 좋지 않을때 쓰는 표현이거든요. 사울의 인생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왕의 모습이 초라하기도 해요. 하지만, 사울이 하나님앞에서 저질렀던 죄에 대해서는 분명히 생각해봐야 하고요.
사무엘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외침 때문에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 한 것으로 전반부를 시작했어요. 하지만 이 책 후반부에서 블레셋 군대의 외침은 에전과 다름없이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었어요. 그들이 원하는 왕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던 거죠. 사울은 블레셋을 물리칠 수도 없었고 그들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힘조차 없었어요.
사울은 블레셋 군대에게 잡혀 고문당하고 불명예를 당하는 것보다 죽음을 택했어요. 이제는 자기연민도 없고, 예전의 사울처럼 할례받은자로서의 당당함이 보이는 대목이기도 해요. 사울이 병기 든 자에게 죽여 달라고 하지만 그는 거절해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는 것 같아요. 사울은 죽음에 있어 불며예스럽지 않은 선택을 했어요. 그도 역시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인거죠. 사울은 그토록 오랫동안 무기에 의지해 살았는데 인생의 마지막 마무리도 무기로 했어요. 이러한 사실은 오직 힘만을 의지하는 자의 최후를 말해주고 있어요. 예수님의 말씀처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한다' 우리 정치인들이나, 권력자들이 이 말씀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한참, 친박이니 비박이니 말들이 많지만, 미래형 권력이 나오면 아마도 이런말들을 언제 했는지도 모르게 없어질지도 모르겠어요.
사울은 죽은 후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불며예를 당하게 돼요. 블레셋 사람들은 그의 목을 자르고 옷을 벗기고 몸을 벧산 성벽에 걸어났어요. 이를 모든 블레셋 지방에 통지하고 자기들의 신전에 고함으로 그 승리를 더욱 공고히 했어요. 하지만 이러한 상황 가운데도 앞으로 그들이 결국 패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본문에 내포되어 있어요. 우리말로는 그냥 '자기들의 신당'이라고 하는 대목이 있는데, 이것은 곧 우상을 의미하고 있고, 다윗에게 패배하고 멸망할 것을 저자는 암시하고 있는 듯 보였어요.
사울은 불명예 뒤에 다시 명예로운 죽음을 맞아요. 바로 암몬 사람들에게서 구해 준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을 통해서 말이죠. 그 사람들은 은혜를 잊지 않고 있었어요.
사울의 죽음과 다윗의 등장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를 곰곰히 생각해보게 하는 것 같아요. 사울을 보면서, 인간적인 마음이 들때도 있었고, 저렇게 하면 안되는데 하면서 비판하기도 했지만, 결국, 저 또한 사울과 같은 모습이 있다는 것을 보게 돼요. 그리고 결국 회개의 자리로 가지 않고, 제멋대로 하면 사울과 같이 된다는 교훈을 얻게 돼요. 하지만, 여기서 좀더 생각해봐야 할 것은, '사울처럼 살지 말자'하는 단순한 교훈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거에요. 사울왕의 죽음과 다윗왕국의 시작, 다윗왕국의 분열의 과정을 통해서 '예수님'이 오신다는 점이에요. 완벽한 왕국은 이스라엘 역사상 없었어요. 단지,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던 왕이 있었을 뿐이에요. 그들또한 결함이 없었던건 아니었어요.
계속 사울과 다윗을 비교하면 묵상했지만, 이제는 사울, 다윗과 예수님을 비교하며 묵상을 해봐야 겠어요. 사울을 반면교사로 삼고 다윗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 모습들을 통해서 오셨던 예수님, 앞으로 오실 예수님을 발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사무엘상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린 최종결론이네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