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심은 나무 /달달한 묵상일기

온전한 가정과 온전한 성

복남진우 2016. 6. 21. 11:57

2016년 6월 20일 묵상일기. 기분날씨 : 좋음.

 

성경적 영성은 절대적으로 관계 중심이며 가정중심이라고 해요.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회적인 존재로 지으신 사회적인 하나님이라고 해요. 현대에 와서 가정이 그 어느때보다도 해체의 위기를 맞고 있어요. 하지만 근본적인 사실은 여전히 변함이 없어요. 그것은 하나님이 바로 가정이라는 사실이에요. 모든 가정은 하나님 안에서 볼 수 있는 사회 생활인거죠. 즉, 사랑의 공동체에 함께 내주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사회생활에서 그 존엄성을 획득하는 거에요(폴 스티븐스에 따르면) 칼 라너라는 학자는 혼인을 다음과 같이 표현을 하고 있어요. "구속받고 성화딘 자들의 가장 작은 진정한 공동체"라고요. 이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돼요.

다음으로 남자 아이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이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돼요.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어요. 우리의 성과 여성을 밀접하게 연관지으신거죠. 그래서 '성'에 대해서 무관심 하면 안되는 거죠. 물론, 왜곡된 성에 대해서는 경계를 세워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고요. 폴 스티븐스는 우리의 성적욕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어요. "거룩하고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완전히 제거해야 하는 것이 아니며, 승화시키거나 억제 해야 하는 내면의 악도 아니다. 오히려 그와 정반대이다. 성은 홀로가 아니라 이성과 함께 자신의 온전함을 찾으라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부르심인것이다." 특히, 은혜로운 부르심이라는 말이 마음속 깊이 새겨지는 것 같아요. 성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세카레'에서 왔다고 하는데, 자르거나 분리하다, 어떤 것이 분리되어 다시 결합하기를 갈망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리처드 로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을 했어요. "성의 힘과 열정은 상극적인 것의 힘이며 반대되는 것에서 나오는 열정이다" 그래서 우리가 성적인 온전함을 추구하고 하나님 나라의 삶에 자신을 바침으로써 하나님 안에서 더 헌신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오전한 성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이르는 기회라고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너무 성적인 문제로 우리 아이들이 힘들어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저 또한 자유했으면 좋겠어요. 힘들게 억압할 필요가 없는데, 저또한 심한 억압으로 인해 힘들때가 많이 있었거든요.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나아가고 싶어요. 그리고 왜곡된 성이 아니라, 온전한 성을 추구함으로 하나님께 이르기를 소망하고, 깨어진 가정이 아니라 온전한 가정을 이룸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품고 살고 싶네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