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남진우 2016. 5. 25. 22:01


2016년 5월 25일 묵상일기. 기분날씨 : 허리의 인대를 다쳐 속상함.


 사랑하는 이는 저에게 늘 이런 핀잔을 줘요. "오빠 몸좀 그만좀 염려해" 그만큼 하나님이 주신 저의 몸에 예민해진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일을 할 때에, 몸을 사린다기보다는 조심을 하면서 일을 하는데, 오늘은 조심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허리를 다치고 말았네요. 그런데 속상한것은, 앞으로 몸을 써서 해야 할일들이 있는데, 그 일들을 어떻게 감당할 까? 하는 거에요. 이럴때에는 이렇게 반응하고 넘어가고 싶네요. "하나님이 치유해주시겠지" 하며 말이죠. 자칫잘못하면 하나님을 탓할 수 있지만, 전적으로 제 잘못인것 같아요. 더욱 조심하지 못한 저의 탓인거죠.

 어제 저녁 평소에 존경하던 이찬수목사님이 저의지역에 있는 대학에 오셔서 집회를 하셨어요. 영상으로만 들었던 목사님의 설교를 현장에서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어요. 제가 너무 기대했는지 모르겠지만, 영상으로 봤을 때가 더욱 은혜스러운 것은 뭘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멋진찬양과 특송, 그리고 설교후 이어지는 기도회까지 너무나 완벽해 보였거든요. 즉, 흠잡을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돌같이 굳어진 나의 마음 때문인지, 아니면 저희가 속한 교단의 문화와 환경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게 되네요.

 하지만 목사님이 전하신 말씀은 들었던 말씀이었지만, 또 다시 저의 마음을 강타했어요. 웃시야 왕의 이야기와 웃시야 왕이 죽던해에 이사야의 고백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셨어요. 평소에도 그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이번에는 내 자신을 특별히 돌아보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역대하 26장 말씀에 웃시야 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웃시야가 왕위에 오를때 나이가 16세였어요. 그는 예루살렘에서 오십이년간 나라를 다스렸어요. 꽤 많은 기간을 통치하였던 거죠. 원래 유다왕이든, 이스라엘왕이든 그 수명이 짧았던 것에 비하면 말이죠. 웃시야는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고 해요. 5절에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사는날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여호와를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더라" 라고 나와 있어요. 즉, 하나님께서는 웃시야 왕이 하나님을 찾을동안만 형통하게 해주셨다는 거죠. 이후 웃시야 왕은 강성해졌어요. 하지만 강성해지면서 16절에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져서 악을 행했다고 해요. 이후 웃시야 왕은 나병에 걸려 죽는날까지 나병환자가 되어 살았어요. 그것도 '여호와의 전에서 끊어져 별궁'에서 말이죠.

 저는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섬뜩해지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러한 교만의 형태는 저에게도 있기 때문이에요. 사울왕도 그렇지만, 웃시야 왕도 그랬어요. 어린나이에 왕이 되어서 잘해보려 했고, 실제로 잘했지만 결국 교만한 왕이 되어버린거자나요. 그래서 목사님의 이 말씀이 기억이 나요.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교만이 먼저 들어와 있다." 저 또한 이말에 공감을 해요. 누군가가 나를 칭찬할때, 내이름이 알려질때 교만도 함께 찾아온다는 것을요. 교양과 교만을 다르다고 해요. 교양은 말 그대로 예의바름이지만 교만은 예의바른것과 다른거죠. 하나님을 더이상 찾지 않는 거에요. 하나님을 찾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는 상태인거죠. 반대로 겸손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안될 것 같은 상태,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면 망할 것 같은 태도가 겸손이라고 해요. 그래서 "교만의 문제는 생존의 문제"라고도 하는 것 같아요.

 이사야 6장을 보면,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는 소명을 받아요. 그는 5절에 그 소명에 대해 처음으로 이렇게 반응해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이후 이사야는 회복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게 돼요. 8절에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저 또한 웃시야왕이 죽던해에 이사야의 고백처럼, 지금 아무것도 변한것이 없고, 되어지는 것도 없는 상황속에서 이사야처럼 고백하고 싶어요. 기독교사로서의 분명한 하나님의 소명가운데 고백해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주님 나를 회복시키시고, 회복시키시는 주님을 경험하고, 주님의 심정을 회복시켜주사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그리고 저 또한 "덜 노리적이면서 더 사랑하라" 라는 목사님의 신념에 공감하며 덜 논리적이며 더 사랑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해요. 왜냐하면 은혜는 논리로 다가가는 것이 아니며, 사랑은 논리를 뛰어넘기 때문이에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