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심은 나무 /달달한 묵상일기

한 영혼을 구하는 것이 온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

복남진우 2016. 5. 16. 23:31


2016년 5월 16일 묵상일기. 기분날씨 : 마음이 편치 않음.


 예수님이 아이들을 대하실 때 공통점이 있어요. 그들의 겉모습이 아닌 잠재력을 보셨고, 그들이 할 수 없는 것이 아닌 될 수 있는 것을 보셨고, 그들의 현재가 아닌 미래를 봤어요.

 오늘 한 아이를 심하게 혼을 냈어요. 그래서 그런지 마음이 편치 않네요. 좀더 인내하지 못한 저의 죄책감에서 오는 불편함인것 같아요. 응보적 정의라는 말이 있어요. 그 말의 뜻은 "잘못된 행동이 있을 때 그에 상응하는 고통과 처벌을 부여하는 것으로 사회를 통제하고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거에요." 여기에는 단점도 있어요. 벌의 효과성이 떨어지기도 하고, 벌의 악순환을 가져오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그 아이와의 관계가 악화된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교사들에게 있어서 가장 편한방법이기도 하고, 능력있는 교사인 것 처럼 보여서 매력적인 방법이 되지만, 관계적인 면에서 볼 때 가장 어려운 방법이에요. 저 또한 응보적 정의로서의 벌을 줄 때가 있어요. 오늘과 같은때인거죠.

 자신의 고집으로 공동체에 피해를 계속 주고, 계속되는 권면을 무시할 때 응보적으로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저의 경우에 그렇죠. 한편으로는 기독교사로서 내 자신을 생각해보면, 좀 더 인내하고, 좀 더 사랑해야 하는 것도 맞죠. 응보적 정의와 대조적으로 회복적 정의가 있어요. 그것은 처벌이 아니라 당사자와 공동체 구성원의 노력으로 피해가 온전히 회복 될때 성취된다는 말이에요. 더디겠지만 관계는 깨지는 위험이 없는 거죠. 그래서 관계성 강화와 공동체성 회복을 위해서 '회복적 생활교육'이 필요한거고요.

 이렇게 저는 이론적으로 잘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잘 지키지 못했어요. 내일 '2박3일의 공동체 훈련'도 있고, 지금 당장 그 고집을 꺽지 않는다면, 2박 3일 내내 우리모두가 힘겨워질 수 있을것 같다는 판단이었어요. 그래서 참고참다가 혼을 낸거였거든요. 그런데 제 마음을 아프게 했던 지점은, 그 아이가 내게 무릎을 꿇고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손을 빌고, '잘못했어요' 하는 모습이었어요. 참 마음이 아펐어요. 내가 이 아이가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쉰들러의 주변에 그의 헌신으로 죽음을 면한 유대인들이 둘러서 있었어요. 그리고 한 랍비가 그의 손에 반지 하나를 쥐어줬어요. 그들의 금니를 모아 녹여 만든 것인데, 그 반지 안쪽에 새겨 넣은 글이 뭐였냐면, "한 영혼을 구하는 것은 온 세상을 구하는 것이다." 이말은 인류의 첫 아들 가인이 아벨을 죽였을 때 가인은 아벨 한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아벨 속에 있는 세상을 다 죽인 것이다라는 것을 뒤집어서 이야기 한거라고 해요.

 저는 오늘 한 아이를 살린것인지, 죽인것인지 두려워요. 교사라는 나의 권위 앞에 한없이 낮아졌던 그 아이를 보면서, 하나님 앞에서의 저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네요. 내일부터 시작되는 2박3일의 캠프기간 동안, 이아이를 통핵 깨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해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