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남진우 2016. 5. 15. 23:58


2016년 5월 15일 묵상일기. 기분날씨 : 좋음.


 이찬수목사님의 "빵없는 빵집"이라는 설교를 들었는데, 베데스다연못에서 고침을 받았던 38년된 병자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문득 옛날에 PBS를 했던 기억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정리했던 글을 찾아 봤는데 없더라구요. 분명히 정리를 해두었을텐데 어디에도 없어서 당황스러웠어요. 그런데, 기억이 하나씩하나니씩 나는 것이 신기했어요.

 베데스다는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있는 못으로, 그 이름의 뜻을 보면, '자비의 집' 또는 '흘러 나오는 장소'를 의미한다고 해요. 그곳은 그렇게 자비가 넘쳐야 하는 곳인데, 완전 변질이 되어버렸어요. 병든 사람들이 낫고자 몰려 들어서 자비라는 말이 들어갈 공간조차 없었어요. 거기에는 '경쟁'만이 남았어요. 마치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의 교육의 현실을 보면 남을 위해 살라고 가르치는 것인지, 아니면 남을 꺽는 법을 가르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이찬수목사님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경쟁한다고 고로 존재한다' 만 남겨져 있는 것 같아요. 1등주의가 있는 곳, 베데스다였어요. 그래서 거기에는 패배의식, 울분, 분노가 남아있었어요.

 38년된 병자가 등장하는데, 그 병자또한 패배의식과 울분, 분노가 있었어요. 예수님은 그 병자에게 물었어요.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은 그 병자에게 어떤 대답을 바라셨을까요? '네 주님 낫고자 합니다' 최소한 이 정도의 대답을 원하셨던 것 같은데, 그 병자는 당황스럽게도 '앞으로좀 가게 해주세요. 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네요.'라고 대답했어요. 그 병자는 예수님의 존재를 보지 못했던거죠. 병을 낫게 해주실 능력자를 알아보지도 못했고요. 하지만 예수님은 그 병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줘요.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병자는 나음을 입었어요. 38년된 병자는 약자였어요. 주님은 그런 약자를 사랑하셨고, 아무 조건없이 고쳐주셨어요. 우리 주님은 그런분이신거죠. 그리고 능력자이셨어요. 또한 소망을 주시는 분이기도 해요.

 주님은 문제해결에 대한 '의지'를 보시는 것 같아요. 병자는 사회에 대한 울분으로 대답했지만, 주님이 원하시는 대답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돼요. 하지만, 주님은 그 병자를 고쳐주셨어요.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는 질문은 그 사람의 무감각을 깨우기 위한 것이었을거에요. 그러나 대답은 그 사람 편에서의 아무런 믿음도 보여 주지 못했고요. 하지만, 걸으라는 주님의 명령에 대한 그 사람의 즉각적인 응답은 놀라울 정도로 신속했다는 거에요. 옛날 말씀을 분석하고 연구할때에는 '베데스다의 병자'에게 포커스를 맞췄다면, 이번에는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께 포커스를 맞춰보고 싶어요.

 베데스다를 베데스다 답게 회복시켜주신 주님, 빵집없는 빵이 아니라, 빵있는 빵집으로 만들어주시는 주님의 능력에 놀라고, 약자와 함께하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주님의 마음에 감동이 돼요.

 나는 과연 예수님처럼 살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베데스다에서의 주님의 은혜와 능력을 다시한번 생각해보면서, 사회적 약자라 할지라도 함께 어울리며, 함께 뛰노는 그런 공동체를 꿈꿔봐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