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은 저항이다
3월5일 묵상일기. 기분날씨 : 좋음.
월터 부르그만의 <<안식을은 저항이다>>라는 책을 읽었어요. 얇은 책이라서 오전중으로 다 읽었는데, 깊이 묵상하게 만드는 책인것 같아요. 우리사회에 대한 비판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어요.
"새롭고 발전된 생산품, 끊임없는 스타일 진보, 그리고 늘새로운 기술은 옛것을 소유함을 부적절하고 불완전한 것으로 만듦으로써 결국 상품이라는 여러 잡신을 만족시킬 노력을 끝없이 하게끔, 이런 노력을 하지않으면 안 되게끔 만든다."(p43)
그의 말을 인용해서 해석해보면, 이렇게 상품을 추구할 수 있는 있는 수단을 가지려면, 남들보다 '우월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해요. 그러면 결국 우리의 능려고가 우월함을 드러내고자 '시험 목적의 교육' 즉, 성적위주의 교육, 입시위주의 교육만 발전시키려고 애쓰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는 거죠. 더군다나 시험을 잘 치려다 보면, 좋은 학교에 들어가려는 압력에 끊임없이 시달리고, 그에 따라 성적을 올리려는 교사의 압박에 시달리게 되겠죠. 이러한 악순환을 "교육의 상품화"라고 말하기도 하죠.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요구한 것은 이웃에게 쏟는 사랑으로 불안만을 야기하는 생산성 중심 풍조에 맞서라는 요구를 했다고 해요. 그리고 안식일을 강조하면서 말하고 있어요. "창조주 하나님이 쉬셨듯이 쉬어라!"라고 말하고 있어요. 불안만을 야기하는 파라오의 시스템과 정반대인 쉼의 시스템을 복돋우라고 강조하고 있어요. 파라오의 시스템을 죽음의 시스템으로 비유하기도 하는데, 이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이들은 다음과 같을 수 밖에 없다고 해요.
- 생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부모나 동포를 천대할 수 밖에 없다.
- 다른 이들이 위협이 되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폭력에 가담할 수 밖에 없다.
- 서로 사랑을 주고 받는 성관계를 상대를 학대하는 상품으로 전락시킬 수 밖에 없다.
-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갖고 있으면 그것을 강탈할 수 밖에 없다.
- 이익을 얻으려고 왜곡과 말 돌려하기에 빠질 수 밖에 없다.
- 탐욕에 헌신할 수 밖에 없다.
모세는 모든 계명을 낭독했어요. "너희는 그럴 필요가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천대하지 않아도 되고, 다른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되고, 간음을 하지 않아도 되고, 도둑질을 하지 않아도 되고, 거짓 증거를 하지 않아도 되고, 이웃의 것을 탐내지 않아도 된다." 이것은 나의 생활의 영역, 인간관계, 나의 삶의 어떤 영역에서나, 바쁨과 탐욕 그리고 더 많은 것을 추구함이 나 자신을 규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과 같다고 해요. 왜냐하면, 우리의 삶의 본질은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두는 바쁜 농사철에도 땅을 쉬게 해줄 정도로 땅을(창조를)신뢰해야 한다. 인간의 삶은 창조의 리듬에 맞춰야 한다. 사람은 그 리듬에 맞출 때에 쉴 수 있고 불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p82)
모세는 그 리듬을 맞추지 못하고 번영만 추구 되면 결국 기억상실을 낳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어요. 우리의 삶의 목표가 얻고 또 얻고 또 얻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웃과 경쟁을 할 수 밖에 없을 거에요.그래서 이웃과의 관계를 소비자로, 생산자로 만들어 결국 언약에 따른 샬롬 공동체 구조를 파괴해 버릴 거니깐요.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억하라"고 이야기 하고 있어요. 마찬가지로 저또한 다음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억'하고 싶어요.
"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다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신명기 16장 19-20)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을 지키면서도 상품을 획득하려는 탐욕을 버리지 않았다고 해요. 즉, 안식을 지키는 행위는 모두 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불안을 야기하고 강요와 착취를 일삼는 행위는 그치지 않았다는 거에요. 이것을 월터 부루그만은 "동시다중 작업"이라고 비판하고 있어요.
시편 73편에서 악한자를 다음과 같이 분류하고 있어요. "형통한자, 고난이 없는자, 교만한자, 잘 먹어 살이 찌고 잘 노는 자, 냉소적이고 사회에 무관심한 자, 유명한 대우를 받는 자, 하나님을 무시하는 건방진 자, 부유하고 평안한자" 저는 이렇게 표현해 보고 싶어요. "하나님을 잊고 사는자"라고요.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을 잊지 않고 예배의자리로 나오고, 기도의 자리로 나오고, 묵상의 자리로 나오는 즉,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원하시는 분임을 깨닫게 돼요. 나의 탐욕과 죄성, 연약함이 불쑥불쑥 튀쳐 나오지만, 생사를 걸고 손을 잡는 난민포로의 아이처럼 고백하고 싶어요.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시편 73:23)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