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기다림
2016년 2월 25일 묵사일기. 기분날씨 : 좋음.
오늘 점심은 나의 멘토선생님과 함께 식사를 하였고, 저녁은 교회동생들과 함께 식사를 하였어요. 점심은 내가 후배라는 이유로 대접을 받았고, 저녁은 내가 선배라는 이유로 밥을 샀네요.
오늘은 누가복음 15장 11-24절 말씀을 묵상했어요. 오늘 본문말씀을 보면 돌아온 탕자이야기와 그의 형의 이야기가 나와요. 어떤 사람에게 두 명의 아들이 있었어요. 작은 아들은 아버지가 살아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유산을 요구했어요. 아버지에게 자기 몫의 재산을 받은 작은아들은 며칠 후에 먼 나라에 가서 재산을 전부 낭비하고 말아요. 마침 그나라에 큰 흉년이 들어서 작은아들은 남의 집에서 돼지를 치며 더부살이를 하는 신세가 되었어요. 배가고파 죽을지경이 되자 아들의 자격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종으로 들어가야 겠다고 다짐하고 돌아와요. 아버지는 아들을 기다렸다는듯이 초췌한 모습으로 돌아온 아들에게 달려가 그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어요.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고 와서 잡게 하고, 함께 먹고 즐겼어요.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죠. "내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다. 그래서 함께 먹고 즐기자"
저는 작은아들의 돌이킴과 아버지의 기다림에 대해 묵상해보게 되었어요.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자유인 것 같고 행복할 것 같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거죠. 선생님과의 대화를 하면서 반복된 비유가 있었어요. "어떤 결과물을 보고 그 결과물을 만들려고 하지 마라" 우리는 흔히 답을 가지고 그 답을 맞춰 살려고 해요. 나에게도 '기독교사는 이렇게 살아야 해'라는 준거의 틀이 있는 것은 아닌데, '기독교사는 기도를 몇시간해야 하고, 성경은 몇장 읽어야 하고, 묵상은 어떻게 해야 한다'라는 틀이 나에게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하나님앞에서 그런 경건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요. 하지만, 그것이 마치 자판기 버튼같은 신앙이 되면 안된다는 거죠.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선한뜻을 발견하고, 그 소명대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것을 깨닫게 돼요.
작은아들의 돌이킴이 저에게는 친근하게 느껴져요. 그리고 아버지의 기다림은 저를 뭉클하게 해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나를 불러주시고 자녀의 특권을 주셨다는 사실이 너무 감격스러워요.
기도해요. '하나님안에서 날마다 참된 기쁨과 행복을 경험하게 하소서'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