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심은 나무 /달달한 묵상일기

안신일, 겸손한 자리에 서다

복남진우 2016. 2. 21. 08:50


2016년 2월 21일 묵상일기. 기분날씨 : 좋음.


 오늘 묵상했던 본문은 누가복음 14장 1-14절 말씀이에요. 예수님이 안식일에 한 바리새파 지도자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수종병 환자 한 사람이 예수님 앞에 나타났어요. 그러자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가까이서 지켜봤어요. 어떤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주시했다"라고 하더라구요. 아마도, 그들은 예수님이 안실일에 율법을 어기는지, 어기지 않는지 지켜봤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어겼을 경우 이때다 하면서 예수님께 트집잡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수종병은 혈액중의 액체성분이 신체조직의 특정부위에 축적되어 몸이 붓는 병이라고 해요. 예수님은 그 병을 고쳐주셨어요. 그런데 제가 주목했던 점은 그 병을 고쳐주시기 전에 예수님이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하셨던 말씀이에요.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느냐?" 그들은 침묵했어요. 예수님의 관심은 어떤 형식적으로 안실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있었고, 율법을 지키는 것보다도 사람에 대한 궁휼한 마음이 앞섰던거였어요. 그리고 초정받은 사람들이 윗 자리에 앉으려는 것을 보신 예수님이 비유로 결혼잔치에 초대를 받으면 맨 끝자리에 앉으라고 말씀하셨어요. 윗 자리에 앉으면 귀한 사람이 오면 끝 자리로 옮겨야 하는 창피를 당하지만 처음부터 겸손하게 끝 자리에 앉으면 초대한 사람이 윗자리를 권하게 되어 사람들 앞에서 영광을 받기 때문이에요. 또한 초대한 사람에게는 잔치를 열 때 부유한 이웃이 아니라 가난한 이웃을 초대하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야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니깐요.

  오늘 본문말씀을 묵상하면서, 학생회 예배 설교를 어떻게 전할까? 를 생각해봤어요. 낮은자리에 계신 예수님이 보이고, 안식일에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주신 예수님도 보여요. 또한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높여야 한다는 교훈도 발견할 수 있었어요.

 교만한 사람과 겸손한 사람의 차이는 뭘까? 하는 질문을 던져봐요. 자주 하는 제스처는?, 자주 하는 말은?, 좋아하는 행동은?, 인간관계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예수님은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식사하시러 들어가겼고, 예수님의 행동은 수종병 환자를 고쳐주셨어요. 그 이유는 육체적인 질병에서 안식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해방시켜주시기 위한 예수님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안식일에 예수님의 관심사와 사람들의 관심사가 달랐어요. 예수님은 병든자를 도움이 필요한자들과 함께했지만,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인가? 생각했어요. 사람들의 관심사를 통해서 그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어요. "교만하고 욕심이 많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비유적으로 권면하셨어요. "낮은 자리로 가라 하나님은 자신을 높이는 자를 낮추시고 자신을 낮추시는 자를 높이시는 분이다."

 우리 주변에는 일어나는 일들을 나열해봐요. 그리고 그일들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떤 마음일까? 그리고 어떤 입장일까?를 상상해봐요. 그리고 월터 브루그만의 <<안식을은 저항이다>>라는 책을 보면, 안식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나와요.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빨리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많은 일을 하는 사회 속에서 무언가를 얻고, 행하고, 소윻려고 하는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제시하는 수요는 생산 만큼이나 소비와도 관련이 있다른 그의 말이 공감이 돼요. 이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더 많이 원하게 하고, 더 많이 소유하게 하고, 더 많이 사용하게 하고, 더 많이 먹고 마시기를 요구하고 있어요. 그것도 다른사람과 달리 우아하게 말이죠. 저는 갈등론자는 아니지만, 약탈과 착취를 반복하는 극심한 경쟁은 쉼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에요. 그래서 안식을 지키는 것은 저항이요 대안인 행위라는 그의 말이 가슴 깊이 새겨지네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