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남진우 2016. 2. 19. 09:25


2016년 2월 19일 묵상일기. 기분날씨 : 분주함.


 아침에 말씀을 묵상하는데, 마음이 분주하더라구요. 조카 병문안도 가야 하고, 어디에 보내야 하는 글도 2편이나 밀려 있고, 강의 나가기로 한 초등학교 기획안도 작성해야 하고, 교회 골든벨 행사도 준비해야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묵상하면서 '빨리 빨리'하자라는 조급한 마음이 들어 불편했어요. 늘 느끼는 거지만, '하나님 앞에서 많이 예민해졌구나' 라느 것을 느끼게 돼요. 한편으로는 나의 연약함과 죄성을 이기지 못하는 나 자신에 좌절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좌절이 나를 말씀으로 직면하게 하고, 회개의 자리로 가게 만드는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이순간 '회개의 자리'로 가고픈 나의 갈망이 커지네요.

 오늘 묵상했던 말씀본문은 누가복음 13장 10-21절 말씀이에요. 오늘 본문말씀은 크게 두맥락으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안식일에 여인을 고쳐주신 예수님', 또 하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겨자씨, 누룩의 비유' 로요.

 예수님은 안식일 날 회당에서 18년 동안 허리가 굽어서 몸을 조금도 펼 수 없었던 한 여인을 고쳐주셨어요. 이 여인의 허리가 '왜?이리 굽었을까?'를 생각해보면, 그 당시 유대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인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되는 것 같아요. 그만큼 여인으로 산다는 것이 고달프지 않았을까? 생각해봐요. 하지만 회당장은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일을 하면 안된다는 안식일의 규정을 들어서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책망해요. '공개적인 책망'에 포인트를 찍고 생각해봐요. 회당장은 아마도 그 지역의 권력자였을 거에요. 각 지역에 있는 회당에 회당장 정도면 우리나라에서 본다면, 어느정도 정치적인 영향력이 있었던 사람일꺼라는 추정을 해봐요. 그런 사람이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책망하면서 자신의 무능을 덮어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예수님은 정확히 그 사람의 문제점을 이야기 해줘요. "위선자들아! 너희는 안식일에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 내어 끌고 가서 물을 마시게 하지 않느냐? 그런데 이 여자는 아브라함의 딸로서 십팔년 동안 사탄에 매여 있었다. 안식일에 이 사람의 매임을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 예수님의 대답은 아주 정확하게 그사람의 위선을 지적했어요. 

 요즈음 누가복음을 묵상하면서 '위선'에 대해 계속 언급되어져요. 율법학자들의 위선, 바리새인들의 위선, 회당장의 위선 들이 나와요. 다들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고, 그들을 바르게 이끌어야할 지도자들임에는 분명해보이만, 예수님은 그들을 칭찬하기 보다는 책망을 많이 해요. 예수님은 왜? 그러셨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보지만, 바로 답이 나와요. '그들의 위선 때문인거죠' 저는 이런 논리를 싫어해요. '너나 먼저 잘하세요', '너도 못하면서 나한테 그러냐'. 한편으로 이러한 말을 들었을 때 '자신의 위선'을 경계하고 점검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나 자신이 착각할 수 있는 부분이 충분히 있다고 봐요. 

 아이들은 저에게 가끔, "선생님도 못하면서 왜 저희들에게만 하라고 하세요","선생님은요?" 라는 말을 할 때가 있어요. 아이들의 눈으로 볼 때, 내게도 '위선'이 있다라는 반증인것 같아요. 참으로, 어려운 자리인것 같아요. '어른이 되어보고 말해봐라'라고 변명할 수 도 있겠지만, 아이들에게 먼저 본이 되지 못한 것 같아 반성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해관계를 따져 행동하고, 자기와 자기 가족들에게는 적용안되는 말씀이, 다른사람들에게는 적용되고, 심지어는 권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니, 하나님의 기름부은 받은 자니, 나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 무조건 순종을 말하는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위선적인 모습에 마음이 저리게 아파오네요.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를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고 해요. 한 알의 밀알이 열매를 맺고, 적은 양의 누룩이 세 말이나 되는 밀가루를 부풀게 하듯, 하나님 나라의 시작은 밀알과 같은 우리들의 작은 헌신과 희생에서 시작되고, 작은 누룩과 같이 부풀어 오른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네요. 

 예수님이 한 여인을 병에서 해방시켜주었고, 정체성의 혼란에서 벗어나게 해주셨듯이. 저 또한 주님이 저에게 말씀해주시는 것 같아요. "진우야 네가 해방되었다"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