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심은 나무 /달달한 묵상일기

나의 앞선 열걸음보다 함께하는 한걸음이고 싶다.

복남진우 2016. 1. 9. 18:14

 

2016년 1월 6일 묵상일기. 기분날씨 : 아주 좋음.

 

오늘 오전강의는 공동체에 대해 들었어요. 사람들은 직장, 가정, 교회(종교)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이 말을 다르게 이야기 하면, 이 3가지에 우리는 자유하지 못하다는 거죠. 잇다에 정동철목사님이 이런말씀을 하셨어요. "함께 모여 산다는 것은 대안이 아니라 원안이다. 그리고 공동체로 왜 모였느냐? 그냥 땡겼다. 그래서 시작했다" 마지막때를 생각해보면 공동체가 아니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요. 이 시대의 교육에서 벗어나고자, 견딜수 없어 대안학교가 나왔고, 이 시대의 교회에서 견디지 못한 자들이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누군가는 교회에서 견뎌내야지, 왜 견디지 못하고 공동체를 만드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하지만 이 문제는 더많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는 공동체적으로 창조 받았는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대로 교회공동체가 그 기능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거든요. 하지만 어느공동체든지 공동체로 살면서 죄가 침투해서 관계를 깨트리는 것은 공통적인 문제인것 같아요.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본질은 바로 "관계"가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그 관계성이라는 것은 스터디를 한다고 해서, 책을 많이 본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닌것 같아요. 물론 스터디안에서의 관계를 통해서, 책을 통한 간접경험을 통해서 얻을 수 있지만, 온전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온전함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직접 살아가면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것 같아요. 다시말하면, 부딪혀 보는 거죠.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졌어요.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서 어떡해 생각하는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아닐 수 있다는 답변이 나왔어요. 이 답변에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 재림이후 완성되는 거지, 지금 현재 완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깨달음이 와요. 완성은 하늘의 것과 합하여 져서 완성할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공동체" 옳음을 규정하지 않고, 그렇게 인식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님의 절대적인 진리에 대해서는 인정해야죠. 하지만 상대적인 진리에 대해서는 그것이 옳다라고 규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해석과 재해석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해나가는데 동참하는 공동체의 미래를 꿈꿔봐요. 그리고 공동체적인 부르심가운데 순종하고 싶어요. 내가 교회이고, 내가 공동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될 것 같아요. 그래서 앞선 열걸음보다 함께하는 한걸음이고 싶어요. 사귐의 교회의 표어처럼, 하나님 나라 복음앞에서 하나님을 따라 춤추며, 춤추게 하는 교사, 아이들과 함께 예배드리며 아이들을 귀하게 여기는 학교, 춤판을 벌이고, 혼자 춤추지 않는 함께 춤추고 춤이야기를 나누고, 하나님께 항상 배우되 아마추어답게 배우는 그런 자세가 필요한 것 같네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