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28일 나도 중요한 사람이구나
하나님은 식언도 하지 않으시고, 후회도 하지 않으신다고 해요. 반대로 이야기 한다면 사람은 식언도 하고 후회도 한다는 말이 되겠죠. 사람들은 많은 상처들을 가지고 사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과 대면을 하다 보면 저마다 상처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고요. 우리 교회 목사님께서는 과감히 부딪혀서 깨뜨려 버리고 해요. 상처를 증오해보는 거죠. 그런다음 화해로 가는 것이 맞고요. 사사기 9장 7-15절 말씀을 보면, 요담이 아비멜렉을 가시나무로 비유를 하는 장면이 나와요. 무화과나무, 감람나무, 포도나무는 충성된 자로, 가시나무는 그러지 못한자로 나오죠. 자기가 왕이 되겠다고 나서고 다른 열매들을 고통스럽게 해요. 따라서 충성된자는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자이며,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자는 정직한 자이고, 정직한 자는 하나님의 소명과 사명을 잘 감당하는 자가 된다고 해요. 예전에 삭개오의 이야기를 PBS를 한적이 있는데 이제 정리하려고 해요. 스스로를 미운존재로, 불쌍한 존재로 만들어가던 삭개오!! 세리와 죄인들을 영접하시는 예수님에 과한 소눔을 듣게 되고, 하나님에 대한 표면적 반항과는 다르게 그의 깊숙한 내몀에 있던 그분에 대한 갈망이 삭개오를 예수님께로 다가가게 했어요. 평소 그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키 작은 삭개오를 막아서며 쾌감을 느꼈겠죠. 삭개오에 대한 그들의 분노는 상상이상이었으니깐요. 그래서 삭개오는 막아서는 사람들의 편견의 담보다 더 높은 곳을 선택하기로 했어요. 그는 뽕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어요. 그때 예수님이 그의 이름을 부르셨죠. "삭개오야" 그 많은 군중속에서 삭개오의 이름이 불리워진거에요. 삭개오의 어깨에서 부끄러운 이름이 꿀러 떨어지는 순간이었어요.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예수님은 친근하게 삭개오에게 말씀하셨고, 그 말씀은 삭개오의 부정적 자아상을 긍정적 자아상으로 바꾸어 놓았어요. "나도 중요한 사람이구나,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나도 쓸모 있는 사람이구나." 그는 하나님이 보시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 주님이 불러주신 그의 이름은 존귀한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던 거에요. 또한 모든 사람들 앞에서 삭개오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부르시면 삭개오가 잃어버렸던 자리를 되찾아 주시기도 하셨고요. 그것은 무리의 편견에 맞서 받아들이라는 주님의 당부이셨을 거에요. 그리고 말씀하셨죠. 예수님은 잃어버린자를 찾아 구원하는 분이시다 라는 것을요. 성경에서는 잃어버린 자란 본래 있어야 할 장소에서 이탈하여 잘못된 장소에 놓여 있는 자를 말한다고 해요.<<오인숙의 아프면, 울어에서>> 이후 삭개오는 존귀한 자의 자리와 새로운 이름을 찾았으므로 자기방어의 벽을 무너뜨리고 이웃을 향한 사랑을 실천하게 되었어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이웃을 사랑할 수 없죠.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신거고요. 풍성한 삶을 살려면 자신의 이름, 자신의 소명, 자신이 하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해요. 내가 기독교사라는 것이 부끄럽다면 나는 예수님을 깊이 만나지 못한거죠. 용기를 내어 하나님을 찾기를 원해요. 주님은 나의 부끄러움을 알고 계시며, 나의 이름도 아시는 분이니깐요. 그리고 그 이름을 새롭게 바꿀 계획도 갖고 계시고요. 기도해요.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고자 했던 그 갈망을 예수님이 아시고 삭개오야 라고 불러주신 것 처럼 나의 어떠함에 좌우됮 않고 예수님이 나를 새롭게 불러주실 것을 믿고 예수님 앞에 나아가길 원합니다."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