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5일 삭개오이야기(1)_ 삭개오가 된 나의 고백
누가복음 19장 1절에서 10절 말씀을 PBS를 해봤어요. 묵상하고 PBS의 차이를 말하자면, 깊음의 차이가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삭개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려고 해요. 항웅재목사님의 찬양중에 <<그 나무 아래로>>라는 찬양이 있어요. 이 찬양을 묵상하다보면 삭개오가 가지고 있는 '순수함'을 느낄 수 있더라구요.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삭개오, 애정결핍과 상대적 박탈감, 외모에 대한 자기비하에 시달리는 삭개오는 돈이라는 것으로 자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잘못된 방법으로 돈을 벌다보니 그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멸시당하게 돼요. 즉, 사랑받은 경험이 없기에 사랑할 줄도 몰랐던 거죠. 그래서 삭개오는 지극히 목마르로 외로운 사람이었을 거에요. 그러던 삭개오가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만나고 싶은 소망이 생긴거에요. 그래서 모든 체면을 내려 놓고 '그 나무인 뽕나무'위로 올라갔어요. 삭개오가 구지 키가 작아서 '그 나무'에 올라간건지, 일단 해석질문을 던져봐요. 여하튼 삭개오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기적이 일어나요. 예수님이 삭개오를 보시고 그 나무 밑으로 오셔서 올려다보며 말씀하셔요.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네 집에서 묵어야 겠다" 이장면을 생각해보니, "나사로야 나오너라", "아이야 일어나라" 등등 예수님의 기적들이 생각이 나네요.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요. 이 장면을 한웅재목사님은 이렇게 가사로 표현했어요. "너 내려오라 인생의 나무에서 너를 지으신 이 앞으로 오래 외로웠던 너의 지난 날에서 나와 너 내려오라 너 내려오라 내게로 오라" 예수님은 그를 부르셨어요 그리고 삭개오는 망설임없이 내려갔어요. 당시 예수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정도로 관심의 대상이었어요. 하지만 삭개오는 모두에게 무시당하고 조롱당하는 사람이었죠. 그래서 삭개오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지 모르겠어요. 아마 제가 삭개오라면 이렇게 생각했을 거에요. "저렇게 아름답고 유명하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나를 부르다니 혹시 나를 조롱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내려가면 내가 무시당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바보가 되는 것은 아닐까.."하고요. 저는 여전히 종종 나무 위레 있는 저를 봐요. 예수님의 사랑을 품은 사람들이 저에게 와서 사랑을 나누어 주어도 저는 도리어 겁을 먹을때가 더 많아요. 예수님께서 저에게 사랑을 주시고 기회를 주시고 사명을 주셔도, 저는 나무 위에서 전전긍긍하며 떨곤해요. 저는 조금 알것 같아요. 제가 온전히 저의 나무 아래로 내려가서 그 크나큰 사랑을 받아들일때, 아마 저에게는 훨씬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을 말이죠. 내일은 예수님의 관점으로 PBS를 해보겠지만 오늘은 철저히 삭개오가 되어서 시적인 언어로 고백해봐요. "앞만 보고 달렸네요 이미 내겐 어느 것도 필요없었죠 나를 외면한 사람들을 보며 이를 악물고 노력했죠 그저 내겐 다른 것이 필요한 게 아니었는데 그 어느 것도..하지만 나를 만난 사람들의 외면..한번만이라도 나를 봐달라는 나의 외침 한번만이라도 나의 눈을 바라봐 줘요, 제말 한번만이라도 한번만이라도...네게 필요한건 그 어느것도 아니죠 나를 믿어줘요..나와 이야기 해요..나의 눈을 봐 주세요..그래서 나무 위로 올라가 당신의 얼굴이라도 봤으면, 나무 위라도 올라가서 당신을 만나고 싶은데, 그렇게 올라가 당신을 보았죠 그제서야 볼 수 있었어요, 당신 모습을 그렇게 올라가 당신을 보았죠, 그제서야 볼 수 있었던 당신이 다가와 진우야 내려오라 내 이름 불렀죠, 진우야 내려오라 내려오라 당신이 나를 불렀죠 나의 이름을, 나의 이름을"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쌤^^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