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일 홍해앞에선 이스라엘 백성들
기독교사모임 개강모임이 있었어요. 본문말씀은 출애굽기 14장 1-18절말씀이었고, 주제는 "홍해"였어요. 본문의 상황을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홍해까지 가게 돼요. 그리고 홍해를 뒤로하고 장막을 치게 하죠. 이것은 자살행위와 같다고 하더라구요. 왜냐하면 이집트 군대가 뒤쫒아올 수 있는 상황에서 홍해를 뒤로하고 장막을 쳤다는 것은 배수의 진을 친건데, 이집트군대가 오면 거의 몰살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거에요.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홍해앞에 장막을 쳤어요. 마치 번지점프대에선것처럼말이죠. 그리고 아프리카 오지로 선교하러 나간것처럼 말이죠.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4절에 모든 사람들이 그대로 행하였다는 말씀이에요. 분명히 이 명령을 순종하기가 어려웠을텐데 모두가 순종했다는 거에요. 아마도 그 무리중에는 두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을거에요. 한부류는 소심이, 또 한부류는 똑똑이, 즉 항상 걱정과 염려가 많은 소심이들이 있었을거고, 상식적으로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볼때 홍해를 뒤로해서 홍해앞에 장막을 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알고 순종하기 어려운 똑똑이들이 있었을거에요. 여기서 잠깐 멈추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봤어요. 둘다인거 같은데, 똑똑이에 속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장막을 치는데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니깐요. 아마도 전쟁에 있어서 전문가인 바로가 볼때는 모세의 리더십은 형편이 없었을 거에요. 마찬가지로 저는 기독교사로 살고 있는데, 그냥 교사도 아닌 기독교사로 산다는 것은 마치 홍해앞에 진을 치는것과 같은 것 같아요. 교사로 사는 것은 문제가 되지는 않아요. 가지고 있는 것들이 많으니깐요. 심지어는 안정적인 직업중 교사가 최고라고 하자나요. 하지만 문제는 예수님을 뜻하는 '기독'이라는 말이 붙으면 문제가 되는 거죠. 어떻게 예수님을 믿는 선생님이 저럴 수 있지 라는 지탄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행동과 언어에 더욱 조심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일이 잘 풀릴때는 괜찮죠. 하지만 문제가 생길때가 진짜문제인거죠. 이집트 군대가 쳐들어 오지 않았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거에요. 하지만 이집트군대가 쳐들어왔어요. 그러자 이스라엘백성들을 바로 모세에게 원망을 하죠. 왜 우리를 데려오서 이런 고생을 하게 하고 여기서 죽게 만드냐고, 하지만 지도자 모세는 달랐어요. "하나님이 하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죠. 그리고 모세는 자신의 자팡이를 들어요. 옛날 하나님을 대면했던 그 지팡이가 아니었어요. 그때의 지팡이는 양을 치는 지팡이었다면 지금의 그 지팡이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던 거에요. 너무 멋진 장면인거 같아요. 하나님의 지팡이를 높이 치드는 모세의 모습을 상상해봐요. 눈에 보이는 홍해만 봤던 거 같아요. 홍해를 가르시는 주님의 손을 보지 못했던 적이 많은 것 같아요. 앞으로 믿음의 눈으로 두려움이 아닌 믿음의 눈으로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주님의 손을 보기를 소망해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