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15일 기독교교육이란
기독교대안학교라고 해도 시설과 규모면에서 다르고, 미션스쿨이라고 해도 거의 일반학교와 다르지 않기 때문에 내 나름데로 편견이 있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모든 학교가 가난해야 하고, 저축하는 돈 없이 모든자본은 어려운 선교지로 보내야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때론 어떤학교를 보고 있으면 사회에서 말하는데로 "귀족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었거든요. 하지만 그건 정말 나의 편견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돼요. 그 과정속에서 벨국제학교와 중앙기독초등학교의 탐방이 결정적인 이유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여름방학을 보내면서 하나님이 주신 비전들이 있는데, 그중에 몇가지가 생태적 감수성을 키우는 노작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과 탈북청소년과 장애학생들에 대한 관점이에요. 생각해보면 장애가 없는 사람이 없는것 같아요. 그 이유는 장애란 별다른 것이 아니라 남들에게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이 장애아동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래요. 고린도전서 4장 4-15절에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아이를 가르친다는 것은 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그 아이에 대해서 알려고 노력하는 것임을 깨닫게돼요. 세계관은 90%가 유치원 이전에 형선된다고해요. 그리고 세계관은 안경이라고 하고요. 빨간안경을 쓰면 빨갛게 보이듯이 말이죠. 그래서 어떤 세계관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해요. 바로 이 세계관을 형성하는 것이 "언어"에요. 물이 흐르는 걸 표현한느 단어가 영어에는 drip밖에 없는데, 한국어는 졸졸, 콸콸 등 정말 많이 표현되자나요. 우리가 배우는 과목들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과 봐요. 예를 들어 수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결국은 나 자신을 가르치는 것이며, 그 낮아진 내가 비로서 학생을 가르치는 거죠 어떤 좋은 교재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거죠. 보여지는 어떤 교재들은 필요한 정말 중요한 것이지만 그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교사라는 존재라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기도하고 싶어요. 가능하다면 새벽기도, 저녁잠자기전기도, 그냥기도, 혼자 특별기도 등등. 그래서 우리 학교에도 도입하고 싶은 것이 아니는데, '하잠멈'이에요. 하던일을 잠시 멈추고 하는 기도에요. 아이들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기도가 절로 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정말 많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기도에 힘쓰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 가르치는 것이 기독교 교육인지, 수억 원을 들여 기독교 교과서를 만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시설을 세우는 것도 아닌것 같아요. 기도하면서 기도하는 삶을 살도록 가르치는 것, 그것이 기독교 교육의 뿌리라는 것을 깨닫게 돼요. 우리학교 사모님을 통해서 제게 끊임없이 말씀하신 하나님 메시지의 핵심은 바로 그거인것 같아요. 기도가 최후의 반응이 아니라 최우선의 반응이죠. 기도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도록 삶에서 기도가 중심이 되도록 기도하는 사람이 되도록, 교육하는 것이 기독교교육이라는 것을 이제 고백하게 되네요. 그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참된 기독교교육임을 깨닫게 되고요. 더 많이 기도해야 겠어요. 일부러 보여주기 위한 바리새인의 기도가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말이죠. 할수없는 것이 많다는 것이 감사해야 겠어요 더많이 하나님께 아뢸수 있으니깐요.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주제가 많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인것 같아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