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냇가에 심은 나무 /달달한 묵상일기

2015년 7월 28일 관계전도를 묵상하며

복남진우 2015. 7. 29. 00:34

 

 오늘은 관계전도에 대해 묵상해보려고 해요. 요즘 전도는 '관계전도'다 라는 말이 있어요. 그것은 사람은 관계지향적이기 때문이며, 전도를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관게중심의 왕국이기 때문이라고 해요. 예수님의 전도 방법도 보면 대중적인 전보다는 오이코스!! 관계 구축에 주력하신 모습을 볼 수 있고, 그것이 나중에 초대교회의 복음전파의 열쇠가 되었어요. 그래서 관계전도에 있어서 효과적인 전도의 키는 시간과 어울림 즉, 서로 깊이 알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며, 변화된 나의 삶의 간증이 있어야 하고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는 최선의 도구인 친절과 영감이라고 하는 영적인 직감, 후히 베푸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해요. 오이코스(oikos)라는 말은 집(house)과 그 집안에 거주하는 가족(extended family)을 뜻하는 헬라어인데, 오이코스 전도에서는 그 이미지가 확장되어 활용되어진다고 해요. 21세기에는 전통적인 가족과 이웃 개념이 무너지고 인간관계가 단절되어 버렸죠. 극도의 물질주의, 무한경쟁과 성공주의 사회로 심각한 인간소외 현상을 가져왔고, 고독한 사회를 만들고, 스트레스로 인한 삶의 의미를 상실한채 일만하게 되고 이로 인해서 영적인 빈곤에 시달리고 있어요. 그럴수록 인간은 내면을 추구하고, 하나님에 대한 강한욕구와 함께 본능적으로 가족과 이웃을 더욱 그리워한다고 해요. 21세기 사회의 약점에서 전도의 강점이 보이는 거죠. 누가복음 10장 27절에 "네 이웃을 네 몸 같치 사랑하라", 마태복음 7장 12절에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예수님의 메시지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대안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아요. 하나님의 방법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이고 사람은 더 좋은 전략을 찾지만 하나님은 더 좋은 사람을 찾으시기 때문에 사람에게 집중해서 한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세우는 사역을 해야 하는 거죠. 공학에 엔트로피 라는 단어가 있어요. 엔트로피는 기계의 온도와 압력과 밀도가 올라갈 때 작업을 위해 사용이 불가능한 에너지의 총량을 말해요. 교회는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만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존경하는 김병년목사님이 페이스북을 통해서 이렇게 지적을 하더라구요. "교회가 자선사업가인가?" 교회는 자선사업장이 아니고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거에요. 그렇다고 해서 관계전도가 중요하니 관계만 생각하고 전도를 한다면 이 또한 문제인것 같아요. 복음에 대해 알아야 하겠고, 세대를 분별할수는 분별력과 지성이 필요하고, 예수님을 담대히 전하는 열정또한 필요한 것 같아요. 가끔은 옛날에 전도하는 방식이 생각이 나요. 어떻게 그런 담대함이 생겼는지 모르겠어요. 길거리에서 "예수님을 믿으세요. 그래야 천국에 갈 수 있어요"라고 외치고 다녔던 어린시절을 떠올려 봐요. 그렇게 전도하다가 소금을 뿌리시는 분도 있었고, 물세례를 받은 적도 있었는데 말이죠. 요즈음은 그런 모습이 아예없다는 것이 아쉬운 마음이 있네요. 그렇다고 해서 이방법이 맞으니 그렇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 열정과 담대함, 주님의 권능과 능력이 필요하다는 거죠. 무모해보이지만 그시절 그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직접적으로 임하기도 했고, 변화되었고, 치유되었고, 부흥이 되었거든요. 그래서 관계전도를 할때에도 뭔가 있어야 된다는 거죠. 릭 리처드슨의 <<스타벅스 세대를 위한 전도>>를 보면 세가지 포인트를 찾을 수 있었어요. 첫째가 공동체를 통한 복음 증거, 둘째가, 영적우정을 나눠야 하는 것, 셋째가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라는 것이에요. 다시한번 관계전도의 의미를 묵상하며 전도를 소홀히 하고 믿지 않는자와 영적우정을 게을리 했던 저를 되돌아 보게 되네요.

 

-말씀과 기도로 사람을 세우는 복남이^^V-